윤동주를 다시 만나다 - 윤동주 | 소강석 詩 평설 나무평론가선 11
김종회 지음 / 문학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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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서정적 감성으로 자아성찰을 넘어, 절실한 기독 신앙과 동시에 나라사랑의 가장 전방 지점까지 나아간 시인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그동안 우리 문단에서는,'일제강점기의 말기에 저항정신과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시인'으로 평가해 왔다. 그의 삶과 시대를 면밀히 살펴 보면,그는 생전에 유명한 문인도 아니었고 독립운동의 전선에 뛰어든 열혈 청년도 아니었다. (-24-)

1939년 23세에 쓴 「자화상」 의 앞부분이다. '논가 외딴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나이는, 우물 속에서 맑고 밝은 자연과 계절을 발견한다. 그리고 또 한 사나이를 본다. 그가 미워졌다가 가엾어졌다가 그리뤄졌다가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여러 면모에 대한 다층적 성찰을 의미한다. (-41-)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거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41-)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목회자로서 윤동주의 시 세계르 새롭게 추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윤동주 관련 평전과 연구 서적을 탐독하고 직접 용정을 여러 번 방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릭교대학, 도시샤대학, 후쿠오카 감옥 등을 두루두루 방문하였다. (-66-)

남의 무덤을 찾아오지 않고서야

어찌 시인이라 할 수 있으랴

그대처럼 아파하지 않고서야

어찌 시를 쓴다 할 수 있으리오

브끄러움 하나 느끼지 않고 시를 썼던

가짜 시인을 꾸짖어주십시오. (-95-)

나의 누추한 방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다도 오히려 슬픈 선창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콧마루, 입술, 이렇게 해서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운 분의 숨소리에 방은 무시무시해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하늘은 역시 말고 우거진 송림은 한폭의 묵화다. (-133-)

꽃들이 시든다 해도

푸른 잎사귀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고

밤하늘의 별빛은 여름일수록 부서질 것이기에

명동촌의 봄은 아쉬움이 없다

봄부터 소쩍새가 울 때에

위대한 별의 시인이 태어나리니. (-147-)

여전히 낯선 땅

무궁화를 짓밟아 버린 적토에 온 것이

아직도 수치스럽지만

도시샤의 서러운 달빛 아래서

시의 신세계에 눈떴습니다. (-160-)

윤동주(1917. 12. 30~1945. 2. 16)는 짧고 굵은 인생을 살았다. 나름 무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민족시인, 독립운동가로 묘사되고 있었다. 시인 윤동주, 그리고 그가 걸어온 삶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추구하는 시가 가지고 있는 근본과 시의 본질적 사유닐에 대해서, 확인사살을 하고 있다.그가 이 세상을 떠난지 어느 덧, 70년이 지났다. 광복을 앞두고 세상을 떠난 윤동주는 잘 나가는 유명인도 아니었고, 특별하게 독립운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며 살아온 인생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성찰하고,참회하면서 살아온 인생,그를 추종하며,오마주하면서 살아온 우리의 인생은 내 삶에 대해서,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우리가 원하는 삶이란 어떤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볼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의 소강석 목사는 시인이다. 시인 소강석과 시인 윤동주의 공통점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독립되지 않는 조선의 풍전등화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야 했던 윤동주가 남겨놓은 대표적인 시, 서시, 자화상이 있으며, 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가 현존하고 있었다. 그가 남겨놓은 불멸의 시집은 우리에게 시가 주는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하고 있었으며, 소강석 시 평설은 시인 윤동주의 시구 하나하나 재해석하고 있었으며,우리에게 남기고자 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 참회와 성찰로 내 삶을 도모하고 있으며,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존엄을 께닫게 해주고 있었다. 주어진 삶에 책임을 가져야 하는 이유,그 최선의 삶이 내 인생에 근본적인 삶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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