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를 놓는 소년 바다로 간 달팽이 24
박세영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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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은 아무리 맞아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었다. 부카의 채찍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떠오르게 했다. 청나라 병사들이 고향 안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부모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날을,압록강을 앞에 두고 끝내 놓쳐 버린 누나의 얼굴을, 윤승은 아픈 기억을 떨치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9-)

윤승은 할 수 있다고 계속 고집을 부렸고 기어코 모란수를 뜯어냈다. 새로 수를 놓을 땐 꽃잎 가장자리에 짙은 붉은색 대신 보색에 가까운 청록색 실로 수를 놓았다. 그랬더니 꽃이 더 화사해 보였다. 또 다른 꽃에는 붉은 색과 청록색 실을 꼬아 만든 꼰사를 사용했다. 이렇게 꼰 실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마치 자색처럼 보였고 꽃에 입체감을 더해 주었다. 윤승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등잔부 아래서 실을 꼬고 수를 놓았다. (-37-)

윤승이 손을 움직일 때마다 병아리 몸통 위에 실이 한가닥씩 걸치면서 병아리 털이 한 올씩 살아났다. 얼굴과 등쪽 엔 갈색과 고동색을 번갈아 수놓아 얼룩덜룩한 털을 표현했고, 배 쪽은 등보다 가는 황토색 실을 사용해 부드러운 느낌을 살렸다. 병아리의 가느다란 다리는 이음수로, 검은 눈동자는 매듭수(실을 바늘에 감아 매듭지게 놓는 수) 로 마무리 했다, 수틀 위에서 막 태어난 병아리 세 마리가 어느 새 삐약삐악 뛰놀았다. (-111-)

윤승은 심양관에서 세자빈이 정명수라는 남자에게 호통 치던 일을 떠올렸다.

"정명수는 조선 출신 역관이다. 지금은 예친왕의 권력을 등에 업고, 용골대(청 태종 홍타이지의 총애르 받던 청나라 장군) 와 함께 다니며 떵떵거리고 있지." (-177-)

"묘족은 오랫동안 명나라에 반기르 들어서 요주의 대상이었거든.직조국 관리는 아버지가 묘족 출신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황실의 오해를 살거라고 했대.이 년전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다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막상 가 보니까 가족을 찾을 수고 없었어." (-201-)

역사 소설 『수를 놓는 소년』은 지금도 있는 평안남북도 안주시, 청천강 남쪽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그곳에서 발견된 수를 놓은 비단 '안주수'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며,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당시 수를 놓을 수 있었던 남성장인이 2미터 길이의 꽃 그림, 화조고, 경직도 병풍을 제작한 , 안주수가 있었으며, 안주수는 청나라, 왕실과 사대부에게 인기가 있는 명품 이다. 박세영 작가는 안주수를 우연히 알고 난 이후, 그것을 배경으로 한 17세기 조선 중기의 삶을 풀어 나갔다.

소설 『『수를 놓는 소년』에 등장하는 아이 열다섯 살 윤승이가 있다. 수를 놓는 것은 여성의 전유물이라 생각하였던 시기에, 윤승이는 누나 대신 수를 놓았고,그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수르 놓ㄴ느 솜씨가 자연을 모방한 것처럼, 닯아 있었다. 어느날 사대부집의 비단에 누런 얼룩이 지게 되는데, 윤승이의 기지로 얼룩진 곳에 수를 놓아서, 특별한 비단으로 만들어졌다.하지만 윤승이와 윤승이 누나의 삶에 불행이 찾아오게 되고, 부모가 돌아가신 상황에서, 누나는 윤승이와 헤어지고 말았다.

청나라가 지배하였던 그 당시, 조선은 풍전등화였다. 심양관이 있었고,그 심양관에는 청나라 사신이 있다. 이곳에 역관도 있었으며,윤승이가 이곳에서, 수를 집접 놓는 과정에서, 누나를 찾으려 했던 이유가 나오고 있다. 남매간의 애틋함, 부카의 채찍에 맞아가면서도, 누나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치 않고 있는 윤승이는 누군가의 도움을 얻게 되면서,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간다.이 소설에서, 그 당시의 조선의 상황,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 끼여 있었던 조선은 청나라에 데해서 오라캐라 부르고 있었으며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역관이 가지고 있는 힘과 권력,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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