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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배 페스카마
정성문 지음 / 예미 / 2023년 10월
평점 :
실직은 누구에게나 슬며시 다가와서 죽음처럼 덮친다.
아버지가 은행에 취직할 때 만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직장이 세 곳이었다고 한다. 학교, 병원, 그리고 바로 은행이었다. 할아버지 얘기에 따르면 6.25 때도 학업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학업열을 가진 국민이 아닌가.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가교사에서 돗자리 깔고 앉아서 궤짝을 책상 대용으로 삼아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전쟁으로 나라는 결단 났으나 학교는 유지되었으니 절대로 망하지 않을 곳임에 틀림없었다. (-7-)
"우리 세대가 얼마나 누렸다고 정년도 안 된 사람들을 자꾸만 내모는지.MZ 세대는 우리를 거저먹은 세대라고 하는데,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다.우리라고 거져 취업한 게 아니라는 말이야.그땐 그때대로 경쟁이 치열했지.사람도 많고."
뉴스를 보던 아버지는 혀를 찼다. (-26-)
자주 사진관에 들르는 사람 가운데 근처 다방의 레지 장미가 있었다. 처음엔 커피 배달을 와서 기다리다 돌아가던 그녀는 차츰 커피를 시키지 않아도 졸다 가곤 했다. 미스터 리는 사진관 사장도 어떻게 좀 해보려 무척 소글 태우는 제법 육감적인 몸매의 그녀에게 당시 톱 탤런트였던 이영애나 심은하처럼 찍어주겠다면 꼬드겨 보았지만 번번히 거절을 당했다.그런데 한번은 그녀가 미스터 리가 혼자 지키고 있는 사진관에 시키지도 않은 쌍화차를 가지고 와서는 대뜸 사진 쫌 찍어줄 수 없냐고 했다.
"니가 증명사진 찍어서 어디다 쓰게?점잖은 데 취업이라도 하려고?" (-36-)
세월과 시간에 따라서,직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직업이 사라지기도 한다. 20세기 직업관은 21세기 직업관과 미묘하게 차이가 나고 있으며, 사라지는 직업과 노동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있는지, 잊고 지낼 때도 있다. 세대차이, 가치관의 차이는 가랑비에 옷젖듯 스며들어가고 있으며,노동의 질도 세월따라 달라졌다.
소설 『욕망의 배 페스카마』에는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소개되고 있다. 첫번째 단편 「패밀리 비즈니스」 와 「카메라맨」이 눈에 들어왓다. 20세기 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IMF가 있다. 국가 부도라고 말하는 초유의 사태가 나타났으며,경제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 아시아의 네마리 용 중하나였던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풍전등화가 되고 말았다. 대체로,그 당시 10대 청소년의 이야기가 IMF 국가부도 사태와 직결될 때가 있다.그런데, 그 당시에 태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잘 다루지 않는다. 지금 MZ세대, 1990년대 어린 아기였던 시기라서,IMF가 피부로 와닿지 않을거라 생각해서였다. 1990년대 MZ세대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 「패밀리 비즈니스」 다.
두번째 단편 「카메라맨」,은 지금은 거의 소멸되고 있는 다방 커피를 언급하고 있다. 이 소설은 버스안내양이 아련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다방에서 커피르 팔고 몸을 파는 아가씨 또한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내 기억 속에 다방 아가씨 보다는 다방 레지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그 당시만 해도, 여성에게 노골적인 손터치가 많았던 시기였으며, 지금의 카페 문화와 다른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차별과 무시,혐오느 그때에 시작되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개척해야 했던 20대 아가씨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추억에 잠기게 하는 소설이 「카메라맨」 이며,그 때 당시 값비싼 아날로그 카메라 하나가, 사람들에게 먹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