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 권리 책고래숲 8
최준영 지음 / 책고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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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건 죽음을 다짐한 순간,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존재론적 상실감, 삶의 허무와 고통을 생각하는 대신 월세와 공과금을 떠올리고 있는 그들의 착하고 순한 마음이다.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이란 늘 그런 식이다. 쉽사리 어려움을 드러내기 보다는 혹여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한다. (-64-)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런 자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으로서의 염치마저 내려놓으면 그건 사람도 아니라는 자학적 도덕률을 품고 있다. 그런 마음은 결코 우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다. 가난을 내면화하고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도록 강요한 사회 분위가가 그것을 정당화해 주는 개발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이다. (-65-)

"읽기와 쓰기가 안 되는 어르신이 계셧어요. 읽기 부분은 대신 해 드렸는데 쓰기는 직접 하셔야 했어요. 민망해하실 줄 알았는데 끝까지 함께해 주셨어요. 글을 쓴다기보다 글자 모양을 그리는 방식으로 참여하신 거죠. 뭉클했어요."

(-158-)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생각이 없거나 꿈이 없는 건 아니다. 당연히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 단순하고도 간단한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자주 본다. 가난한 이웃과 노숙인, 어르신, 미혼모, 탈학교 청소년, 한부모 여성 가장, 교도소에 다녀온 사람, 보육원 아이들은 그저 무시하고 멸시하고 사람 취급 안 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183-)

사람에게는 누구나 결핍이 있다.결핍은 모든 사람의 문제지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경제적 결핍에 시달린다. 부자라고 해서 결핍이 없을리 없다. 돈에 대한 집착이 그 외의 삶의 가치를 압도하는 데서 오는 정서적 결핍 역시 경제적 결핍 못지 않은 심각한 결핍이다. 나이가 많은 분은 나이 그 자체가 결핍일 테고, 젊은이에게는 연륜과 경험이 결핍됐다. (-199-)

결핍과 열등감이라는 개념이 생성되면서, 인간의 삶에 삶의 가치와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우선하고,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인간의 행위가 반영될 수 있었다.가난은 돈에 대한 결핍과 열등감에서 시작된다. 궁핍하거나, 기아를 몸으로 느껴야 하는 절대적 가난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으며,상대적 가난이 남아 있다. 그건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았던 과거의 삶에서 탈피하고, 대한민국 전체에 보편적인 사회복지가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물질적 결핍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정서적 결핍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어서,물질적 결핍에서 벗어났지만, 허무함,정서적 고통으로 인한 정서적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 채워지지 않고 잇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인간의 삶에 더 나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불행한 삶,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현실이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우울과 허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서로 연대하지 않고, 급변하는 시대적 변화에 대해서,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사라지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간격이 더 넓어지고 있으며, 가난에 대해 현실적 괴리감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가난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개념이며, 밖에서 볼 때, 돈에 대해 자유로운 부자들이라 하더라도, 부자들 사이에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그들조차도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결핍과 열등감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가하며,때로느 공감가지 않은 가난도 존재한다. 정서적 결핍이 가난이라는 주제,인문학과 엮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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