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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세이 최승희 ㅣ 인문독회 1
김태형 지음 / 청색종이 / 2023년 8월
평점 :
최승희는 해주 최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최씨 집안은 정승 판서가 나온 명문가였다. 아버지 최준현은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상당한 자산가였으며 어린 딸을 귀여워하는 자상한 분이었다. 양반 가문인데, 일본의 게급으로 치면 지체가 높거나 나라에 공훈이 있는 화족과 무사 계급 중간 정도의 유서 깊은 구가였다. (-21-)
일본 동북지방 아키타현에도 이시이 바쿠의 탄생지를 알리는 기념비가 있다.이곳에도 역시 '창작무용'을 발표한 무용가로 표현하고 있다. 생몰 연도와 본명이 이시이 타다토시 라는 점, 태어난 지역과 25세 여름에 데이코쿠극장 가극부 연구생에 합격하면서 무용가가 된 내력, 창작무용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무용가로 평생에 걸쳐 춤을 췄다는 간단한 이력이 목조 기념비 아래 쓰여 있다. (-61-)
이에 앞서 최승희는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 입문한지 석달 마인 1926년 6월 22일에 <그로테스크> 등 몇 작품에 처음으로 출연한 바 있다. 이때 무용단에서는 어린 최승희를 '사이 쇼코' 라는일본식 이름으로 편리하게 고쳐서 불렀지만, 최승희는 자신의 이름이 달리 불리는게 이상했는지 다음 달 공연부터 본명을 상용하고 싶다고 요청해서 자시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91-)
'도약'이라는 말은 몸을 위로 솟구쳐 뛰어오르거나 더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이 두가지 의미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비유로 수렴된다. 의미 없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그리 흔치 않다. (0165-)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과 함께 일장기말소사건은 뗄려고 해도 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1936년 8월 13일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 8월 25일 <동아일보>에 각각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진을 게재하면서 해당 기자 이길용은 구속되었고,최승희의 발랄한 소녀 사진을 찍은 것으로 잘 알려진 사진부의 신낙균과 사회부의 소설가 현진건 등 려러 사람이 함께 구속되었다. (-248-)
최승희가 구미로 떠나 것은 1937년 12월 19일이었다. 이때부터 1940년 12월 5일까지 3년 동안 미국, 유럽,남미에 걸쳐 150회가 넘는 순회공연을 하고 나서 '세계의 무희'라는 수식을 얻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80 여 년전의 일이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거너서 끝도 없이 가야만하는 험로였다. 최승희의 말에 의하면 세계 순회 공연 중 지나온 길은 3년 동안 10만 마일, 약 16만 키로미터에 이를 정도였다. (-288-)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는 1911년에 태어나 1969년에 세사을 떠났다. 그녀에게 오빠 최승일이 있으며, 무용을 가르쳐 준 일본인 스승 이시이바쿠가 있다. 최승희는 이시이 바쿠 무용단 에 입단하였고,본격적으로 자신의 활동의 폭을 넓혀 왔다. 책에 또다른 인물 음악 교사 김영환이 나오고 있으며, 세계적인 무희 최승희는 해주 최씨 집안의 명문가 자제다. 춤을 좋아하였고, 숙명여고를 다닌 최승희에게 춤, 무희로서의 삶은 운명이다. 조선 무희 최승희로 알려졌으며 ,조선의 전통 무용을 새롭게 탈바꿈하게 시작하였으며, 조선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데 앞장섰다.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북한에서 활동하였으며, 삼항 곳도 평양직할시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음력 1912. 8. 29~2002. 11. 15.) 과 교류하였으며, 1946년 7월 20일 최승희는 월북하게 된다. 최승희의 삶, 사진,동영상은 일본과 북한에 남아 있으며, 실제로 남한에 살았던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 최승희의 삶에 친일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오빠 최승일과 스승 이시이바쿠의 관점에서, 최승희의 삶이 어떠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시이바쿠 무용단에서 활동하면서, 공연 『그로테스크』를 통해서,자신의 춤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물론 최승희의 삶이 남한에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해금이 된 1988년 이후였으며, 최승희의 제자 원로 무용인 김백봉(1927~2023) 씨가 있다.조선의 춤사위의 대가였던 최승희는 전세계를 누비면서, 10만 마일의 마일리지 기록를 가지고 있었으며, 현대 무용과 전통무용를 서로 융함하여, 조선의 고운 선을 춤에 적용하였으며, 대한민국 현대춤의 효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