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 - 1313일의 기다림
이경태 외 지음 / 북콤마 / 2018년 5월
평점 :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세월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이다. 이 책은 이들 다섯 가족이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7개월, 팽목항에서 17개월, 그리고 팽목항을 떠나 목포신항에서 지낸 7개월여의 시간을 기록한 마지막 미수습자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다. (-5-)
2017년 11월 8일, 미수습자 남현철 군의 아버지가 서울 상암도의 <오마이뉴스>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이제 그만 아들을 떠나보내고 싶은데,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17-)
결국 시신 없는 장례식이 치러질까. 아직 미수습자 다섯 명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수색 종료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떠날 시점 등을 마지막으로 논의하고 있다.기자회견 발표가 임박했다. 2017년 11월 14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3년 7개월 만이다. (-25-)
밖을 다닐 수가 없었다. 누구 만날 수도 없었다.'혹시나 누가 자신을 알아볼까 봐' 조마조마하는 부모는 죄인이었다. '내가 자식을 못 지켜서 사고가 났나' 하며 엄마는 늘 자신을 탓했다.'지키지 못했으면 찾기라도 해야 하는데,그마저도 못하고 있으니, 내가 잘못한 게 그렇게 많앗던가.' 부모는 늘 죄인이었다. (-67-)
1985년 8월 17일 토요일. 경기도 안성, 지하 1층에 있는 백운다방,. 오렌지색 투피스와 검은색 줄무늬 양복.
아내 유백형 씨는 아직 생생하다. 남편인 양승진 교사를 처음 만났던 날, 만났던 곳, 입었던 옷...유도를 했다던 교사 1년 차 스물아홉 청년은 덩치가 산만 했다. (-76-)
권오복 씨를 참사 당시부터 지켜봐온 한 자원봉사자는 그를 '팽복항 산증인'이라고 불렀다. 그가 동생 권재근(52세) 씨와 조카 권혁규(6세) 군의 뼈 한 줌이라도 찾겠다며 버텨온 시간이 무려 1313일이다. (2017년 11월 18일까지).지친 유가족들이 하나둘 떠날 때도 사고 해역을 지켰던 그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218일, 팽목항에서 862일,목포신항에서 233일. 그는 말했다."아직 미수습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버텨야 했다"고. (_97-)
권오복 씨 생각에 좀 더 지나면 박수는 커녕 손가락질 받으며 떠나야 할 것 같았다. 유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사를 가려 동생 권재근 씨가 챙겨놨던 옷가지, 조카 권혁규 군이 좋아했던 커다란 초록색 거북이 인형...이 모든 것들은 주인의 시신 대신 오동나무관에 입관되어 태워지고 재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권재근 씨의 부인이자 권혁규 군의 엄마 한윤지 씨가 안치된 인천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으로 간다. (-110-)
현철 군의 아빠 남경원 씨는 아들을 떠나보내기 전 빈소에 마지막 향을 켰다. 평소 다니던 교회에서 찾아와 마지막 기도를 했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기족과 교인들이 함께 하는 예배. 끝내 현철군의 엄마 아빠는 입을 떼지 못했다. (-145-)
세월호 미수습자 다섯 사람.2014년 4월 16일 참사 이후 1313일 동안 뼈 한 조각이라도 손꼽아 기다렸던 가족들은 이제 아들을,남편을, 아빠를 ,동생을,조카를 가슴에 묻기로 하고,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 인근 컨테이너 숙소 생활을 접고 떠났다. 끝내 돌아오지 않은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176-)
가족 곁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 명을 찾을 것만 같아 애타게 물밖으로 나오기를 수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달며 기다렸다.
마침내 거대한 몸집을 수면 위로 드러낸 세월호는 아홉 명의 가족에겐 희망이었다. 그런데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마지막 네 가족은 고스란히 절망을 받아들이며 결국 세월호 곁을 떠났다. (-240-)
"그렇게 빌어도 한 번을 안 나오더니...며칠 전 꿈에 나왔더라고요."
2018년 1월 16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아내의 목소리가 참 오랜만에 뜰떠 있었다. 세월호 참사 후 정확히 3년 9개월이 지난 이날은 단원고 교사 아홉 명이 현충원에 안장되는 날이었다. 양승진 교사의 아내 유백형 씨는 "(참사후) 3년 9개월 동안 볼 수 없었던 남편의 얼굴을 며칠 전 꿈에서 봤다" 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제가 자는 침대 머리맡에 남편 사진을 걸어두었거든요. 딱 그 모습이었어요.너무 선명해서 아직도 생생해요.남편이 '여보,고마워.나 , 편하게 잘 있을게' 그러더라고요." (-258-)
2014년 4월 16일 , 세월호가 침몰하였고,제주도 수학여해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아이들은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 다이빙벨, 컨트롤타워,대조기,소조기,중조기, 해경에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문제삼았지만, 단원고 유가족의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배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 하였던 그 시간에, 배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하나둘 배 갑판에서 ,떠났고, 3류 선장 이준석 선장은 재판 후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내가 머무는 국가가 나의 안전을 책임져 줄거라는 믿음과 신뢰가 있다. 하지만 예고되지 않은 사고는 그 기대를 ,그 믿음을 무너뜨렸다. 세월호 참사가 그러했고, 이태원 참사가 그러했다. 그 참사 이후 벌어지는 천태만상은 대한민국의 국가 체제와 법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이너졌다. 사람에 대한 트라우마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세월호 참사 단원고 선생님에 대해서, 그분들의 죽음조차도 차별했다. 기간제 교사들을 현충원에 안장할 수 없다는 정친적 논리가 팽배했었다. 국민들의 공분이 들떠 있었다.
1313일, 세월호 참사는 미수습자 다섯명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의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권잴근 , 권혁규 부자는 한 가족이었기에 실제로 네 가정의 깊은 슬픔이 되었다. 죄책감과 절망 그 자체였으며, 그 대당시 오롯히 혼자 살아남았던 다섯 살 아이 , 권혁규의 여동생 권지영은 14살이 되었다.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아이, 비극이며,절망이었고, 슬픔이다.
산입에 거미줄 치랴, 권오복씨가 4년가까이 팽목항을 지켰던 이유다. 권재근, 권혁규의 직계가족이 아니기에, 팽목항 유가족, 권혁규, 권재근 부자의 사망에 대해서,미수습에 대한 물적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막혀 버린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삶은 ,그가 지내왔던 1313일은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견뎌야 할 책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존중,생명에 대한 존중, 사회에 대한 신뢰와 회복이다.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한 사회에 대한 불신은 모래성과 같이 무너졌고,다시 쌓기에는 오랜 시간이 덜리기 마련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미수습자 다섯, 그리고 세월호 마지막 네 가족을 통해서, 삶을 배우고,생각하였고,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