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 사냥, 도살, 도축 이후 문자 발명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역사
헤르만 파르칭거 지음, 나유신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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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에티오피아에서 나온 인간 화석이 현생인류로 간주될 수 있는가장 오래된 증거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화석은 약 19만 5000년 전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남아프리카 풀로리스배드에서 이보다 훨씬 더 앞선 25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잘견되었다. 이 연대 추정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호모사피엔스가 동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프리카 대륙 남부와 서부로 퍼졌다고 하는 지금까지의 가설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80-)

“하지만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종들은 대부분 종말을 맞이한다. 이 동물상이 멸종한 이유를 호모 사피엔스가 전문적이고 고도의 솜씨를 가진 사냥꾼이었다는 데서 찾는 학자도 있다. 소위 말하는 오버킬 가설은 ..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오히려 동물상의 일부가 멸종되는 현상은 기후 변화 또는 여러 원인의 복합 작용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현생인류의 사냥 기술에만 그 이유를 돌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133-)

통상적으로 가옥에 설치되어 있던 시설로는 화덕, 점토로 만든 긴 의자, 지면보다 높게 만든 단상이 있다. 내부에서는 갈돌, 토기, 규석과 흑요단으로 만든 용구들, 바늘, 뼈로 만든 작은 도구들,여러 암석과 광물로 만든 구슬들이 발견되었다. 흑요석은 자르모 유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온 것이었다. (-223-)

띠무늬 토기 시대의 가옥은 한 채씩 따로 떨어져 세워졌어도, 바로 곁에 마당이 있었다. 유물들의 위치를 분석한 결과 이곳에서 여러 수공업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옆에서는 길게 판 도랑이 자주 발견되었는데 이는 보통 진흙을 내다 버리거나 쓰레기를 처리하는 용도였다. (-345-)

이후 사하라 동부는 기후가 점점 더 거조해지면서 인가이 더 이상 살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 결과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기원전 3000년대에 나일강 계곡으로 떠나 정착하게 된다. 이 사막 지대의 선왕조 시대와 초기 왕조 시대의 흔적은 다른 맥락 속에서도 관찰된다.낙타 대상들은 나일강 계곡으로 꽃핀 이집트 문명을 사하라와 사헬 지대의 다른 지역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런 경로로 사하라 이남 지역의 이국적 물자가 나일강 지역으로 들어올수 있었다. (-437-)

암냐야 문화 시기 동안 최초로 말이가축화되었다. 따라서 폰토스 북부 스테지역은 고대 세계에서 말을 가축화시킨 가장 오래된 중심지로 간주된다. 이와 비슷한 중심지가 또 발견되는 곳은 북카자흐스탄 스텝 지역에 있었던 보타이 문화다. (-545-)

인더스 계곡 서북부의 또 다른 중요한 선사시대 주거 유적지는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근처에 위치한 반누 평원이다.이 건조한 지대에서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미 인공적인 관개 시설을 이용했다. 줄잡아도 면적이 21헥타르에 달하는 셰리 칸 타라카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지방 중심지 중 하나였다. 기원전 4000년대부터는 주거지들 사이의 뚜렷한 위계질서가 특징으로 나타난다. (-633-)

오세아니아 군도는 지구에서 선사시대 인간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도착했던 지역이다. 또한 이곳에 사람이 살게 된 것도 연속적인 이주를 통해서가 아니라 가끔가다 한 번씩 한꺼번에 이동해오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의 여러 여러 섬에서도 이주민들이 가다가다 한번씩 꾸준히 밀려들어왔다. (-724-)

기원후 제1천년기 초의 이러한 초기 촌락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가옥이 몇 안되는 촌락부터 20채가 넘는 마을까지 다양했다. 집 주변에는 으레 저장용 구덩이와 모닥불 자리가 발견된다. 기원후 제1천년기 후반부터 마을은 크게 성장했고,그 내부 구조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변화된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해서 이제 푸에브로 문화형성의 여명기가 밝아온다. (-826-)

브라질의 대서양 해안을 따라가보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기아나 해안 지방에서도 이미그랬듯이 북쪽 아마존강어귀부터 남쪽의 라플라타강까지 수백 , 아니 수천 개의 조개무지 (삼바키스)가 나타난다! 조개무지 주거지들은 해안에 바로 면해 있거나 바로 인접한 내륙 지방에 위치해 있다. (-942-)

“이는 정착생활과 생산 경제가 반드시 뚜렷한 사회적 계층의 분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 오히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위의 요소들에 더해 금속의 소유와 가공이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경제적 요인으로 나타나는 곳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회적 계층화가 일어나기 위해 늘 금속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 1001-)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라는 한국판 제목은 5대양 6대주를 아우르고 있으며,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신대륙인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는지 살펴 보는 좋은 기회이다. 이 책은 우선 고고학과 건축학을 아우르고 있었다. 태초의 인류는 앞으로 앞으로 당겨질순 있지만, 뒤로 물러나는 일은 없다. 단 인간의 처음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며,고고학자들이 인류의 뼈와 화석을 찾는데 혈안이 되고 있었다. 원서 제목을 보면 『Die kinder des Prometheus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 로 되어 있으며, 원제목이 함축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간이 불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그것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종이었다.

홀로세 이전에 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이 있었다. 258만년전부터 , 1만 2000년 전까지의 긴 기간으로서,빙하기를 지나 인류가 포유류의 약자로서의 눈치 ,생존, 족쇄에 벗어나 아프리카에서 서서히 이동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인류의 화석을 근거로 25만전 전까지 확인이 되고 있었으며,아프리카의 이동경로를 확인하는 동시에 오세아니아에 어덯게 인류가 도달할 수 있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특히 기후가 온화하면,인류는 정착한다. 그 과정에서, 수렵, 채집, 어획으로 먹이를 직접 구하고, 집을 짓고 생명을 보존 유지하는데 모든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가 도래하여,인류의 생본에 위협이 나타나면, 인류는 다시 이동하였고, 아프리카,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이동하였으며,수렵 채집에서 벗어나 농경사회로 발전됨으로서, 잉여 농산물이 나타나게 되었고, 권력의 개념이 인류에게 서서히 씨앗을 뿌리 내릴 수 있었던 이유다. 이가운데 놓칠 수 없는 것, 수렵 채집에서 벗어난 인륙가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낙타에서 시작된 가축은 말과 소, 염소와 양을 가축화하게 되었고, 그것들을 인류의 고기를 제공하는데 쓰여지게 된다. 그리고 인류는 군장국가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할 수 있으며,언어르 쓸 줄 아는 인간의 모든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들이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지식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명징하다. 그러나 동일한 영장류 중에서도, 침팬지, 보노보노, 코끼리, 고릴라는 불을 이용하지 못한다. 단 코끼리의 코는 인간의 손에 해당되어 물건을 집을 수 있고, 먹이를 입으로 가져오는데 요긴하게 쓰여지는 생존도구였을 뿐이다. 하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인간 스스로 자연의 불을 이용할 줄 알게 되었고,그 과정에서,단순하게 사용하였던 도구들을 발젼시키게 된다. 토기문화가 만들어지고,각종 그릇들을 흙으로 빚을 수 있었던 이유다. 우연과 필연에 의해서, 서서히 깨어날 수 있었던 인류는 하나씩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찾게 된다.그로 인해 홀로세로 접어들어갈 수 있었고, 오대양 6대주에 인류가 흩어져 살아가면서,공동체를 이루고,집을 지어서, 외부의 침입을 막았고,본격적으로 농경사회가 되고,계급사회 법과 제도,언어로 이루어진 지금의 인류의 원형이 만들어진다. 아직 호로세 멸종의 원인이 인간에 의한 것인지 밝혀진 게 없다. 그리고 인류는 삶에 대해서, 생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였으며, 사후세계 뿐만 아니라 종교,신앙을 만들어서,인류의 발자취를 문명화하였으며, 명문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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