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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을 건너온 약속 ㅣ 오늘의 청소년 문학 39
이진미 지음 / 다른 / 2023년 8월
평점 :

침이 마른다. 눈앞은 온통 시커먼 어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누군가의 손의 휙 튀어나와 머리채를 잡아챌 것만 같다. 린은 어둠 속에 포위된 작음 짐승처럼 오갈 곳을 모른 채 서 있다. 또렷하게 반작이는 작은 빝, 나르 노리는 야수의 눈동자일까.횃불의 행렬과 순식간에 사바을 둘러싼 뾰족한 것들이 린을 찌를 듯 와락 달려든다. 눈을 뜰 수가 없다. 괴로워 미치겠다. 숨을 쉴수도 없다.악 소리라도 지를 수 있다면 이 뾰족한 것드를 모조리 쫓아 버릴 수 있을텐데. 하지만 외침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고 소용돌이치며 심장을 뚤흘 듯 파고든다. (-9-)
정필은 집으로 발걸음을 재게 옮겼다. 징펄이 감옥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어머니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동생 정훈의 말로는 그날 뭇매를 맞은 뒤로 목숨만 붙어 있을 뿐이지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큰 아들을 보고는 당신도 살아 보겠다고 꾸역꾸역 안간힘을 쓰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앉을 정도까지 회복이 되었다. (-18-)
2018년 5월 7일.
어렵게 약속을 잡아 기차를 몊 시간이나 타고 먼 길을 다녀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다. 어젯밤에도 끔찍한 악몽에 시다렸다. (-43-)
"아이고 참. 이 어려운 시국에 우리 마을과 국가를 지키느라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협조 좀 잘해 주시지."
박씨가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며 자경단 청년 앞으로 냉큼 나섰다. 정필은 머리가 주뻤 섰다. 지씨도 하얗게 질렸다. (-59-)
열차 안은 피난민들로 빽빽이 들어차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였다. 열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지붕 위까지 올라가 자리르 잡았고, 더러는 열린 문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기도 했다.보일러실 주변까지 점령한 사람들은 열차라는 거대한 먹잇감에 달려든 개미 떼처럼 보였다. 그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겪은 지진 경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열차 안은 귀청을 뚫을 듯 소란스러워졌다. (-102-)
히데코는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흥얼거렸다.
따듯한 남쪽에서 봄이 오면은
아름다운 들판에 꽆이 피어요.
빨간 꽃 ,노란꽃 자랑하면거 나도나도 즐겁다고 노래불러요. (-130-)
"으음, 잘 잤다!"
린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기지개르 쭉 켰다. 나고야에 다녀온 뒤로 신기하게 악몽이 사라져서 매일 밤 달게 잘 수 있었다. 린은 일어나자마자 방 핝편에 모셔 둔 할머니의 불단 앞으로 갔다. 오랫동안 불단 속에 머물던 만년필 펜촉은 나고야에 사는 양씨 할아버지네 집으로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갔다. (-157-)
1923년 9월에 일어난 일본 관동대지진, 그리고 그날 일어난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을 대학살한 사건들, 요즘 유투브가 발달하여,그 시대의 상황을 역사가의 분석을 통해 자세하게 언급된 바 있었다.우리의 아픔이자 그 아픔은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어지고 있다. 천소년 소설을 주로 쓰는 소설가 이진미는 역사를 소설로 였어내고,그 과정에서 고증을 거치고 있었다.
2023년 마에다 린과, 1923년 경남합천 에 서 살았던 양정필을 등장하고 있었으며,이 두 사람이 백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서,왜 두 사람이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특히 일본 도쿄는 1923년 조선에 비해 잘 살았다. 풍족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도쿄에서, 조선인은 천덕꾸러기 신세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관동대지진은 조선인을 잡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일본 자경단(自警團, vigilante) 이 등장하고,전쟁이나 큰 범죄, 어떤 자연재해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습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조선인 청년에게 폭력과 폭압으로 나타나게 된다.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십오엔 오십전'을 발음하게 하여,조선인들을 무분별하게 색출하였고,그 자리에서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관동 대지진으로 , 화재가 발생하고,우물에 독을 퍼트린 이가 조선인 청년이라고 말한다는 것,그 루머가 확산함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명분이 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악모에 시달리는 마에다린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미래의 평화를 위한 역사적 성찰을 위해 쓰여진 소설로서,후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돌아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