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죽지 마세요
최문정 지음 / 창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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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은 그해에 완벽히 부서졌다. 세상의 모든 악(惡)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교장의 태만, 교감의 갑질, 교사 간 갈등, 불공정한 업무분장, 부당한 업무지시, 아동학대 고소를 협박으로 사용하는 아이들, 부당하고 어이없는 학부모 민원...

처음에는 악에 저항하고 비(非) 에 대립했다. 하지만 나는 힘없는 개인에 불과했다. 악에 물어뜯긴 내 육체와 정신은 너덜너덜하게 찢기고 닳았다. 질 게 뻔한 싸움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11-)

경합지역의 경우 단순 5년 만기로는 절대 진입할 수 없다. 3지망까지 희망지역을 쓰게 되어 있는데, 운이 나쁘면 희망하지 않은 지역으로 발령이 난다.기피 지역은 대부분 외곽이다. 내가 근무하는 경기도는 지역이 넓어서 외곽으로 발령 나면 서울에 거주하는 교사들은 4시간의 출퇴근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그러니 어떻게든 주거지와 가까운 학교로 발령받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25-)

우울증 증상은 단순한 우울감만이 아니다.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우울증 증상은 자살 충동으로 인한 자살시도가 성공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이 심각해지면 뇌가 손상되고, 인지능력 저하로 치매에 걸린다. 어쩌면 인지능력 저하는 인간의 본능일수도 있다. 상처받아 고통스러운 기억마저 지우고 싶은, 마음 속 깊이 숨겨진 본능 말이다. (-165-)

준비도 되지 않은 채 황급히 결정한 휴직이었다. 휴직 절차상 진단서는 필수였다. 교무부 인사담당자, 교무부장, 교감, 교장, 결재라인을 따라 내 병명이 알려졌다.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개인이 사생활이니 보호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집에서 쉬고 있으면서도 학교 사람들이 내 병에 대해 수군거릴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렇게 1년,의사는 6개월의 진단서를 또 한 번 발급해 주었다. 그렇게 또 다시 6개월 후, 나는 마침내 복직했다. (-218-)

한국 사회는 참 독특하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그제서야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난것처럼, 난리가 난 것처럼 한국이 바뀌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 속에 지워지곤 한다.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방화,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 최근 학교의 민원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선생님이 그런 예이다.하교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학부모의 민원을 무마하기 위해서, 선생님의 개인 월급을 털어서, 그 ㅂ학부모에게 여러차례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그 선생님에게 악성민원을 여러차례 오린 학부모의 신상이 털렸고, 관련 업체가 사과 글을 올리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겉으로 보기에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한다고 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갑질에 대해서,응징하는 또다른 국민갑질이다. 법이 가해자에게 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국민들이 나서서 응징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사라지고 있는 인권 존중이 소멸되고 있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저자가 선생님으로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모습들이 느껴졌다. 물리학 선생님이 노골적으로 지구과학을 가르치고 잇는 저자에게 들으라는 듯한 말을 한다.공강 시간에 행정적인 일을 처리해야하는 현실, 여대생들이 선망하는 학교 선생님은 또다른 3D 업종 노동자에 불과했다. 학부모의 갑질과 교장 교감의 무책임함, 여기에 더해 또래 선생님의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들이 존재한다. 즉 한국 사회 특유의 우월의식이 갑질을 부채질하고 있었으며,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선생님과 학생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교감 승진,교장 승진 과정에서, 담임을 해보지 않은 교감은 현직 선생님과 마찰이나 갈등을 주로 일으키고 있으며,그 과정에서, 업부 분장이나,여러가지 일에 대한 불평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한 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우울증,공황장애, 자살충동까지 이어지는 저자의 학교 생활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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