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시대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 2
자오위안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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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은 의심할 바 없이 고대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현상 가운데 하나였다. 명나라 유민은 고대 중국 유민의 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은 사람의 수가 많고 관련 문헌이 풍부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생존 방식이나 표현 방식에서 주목할 만한 인습과 창의적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10-)

우리 유학자들은 벼슬길에 나아가고 은퇴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데 허형이 벼슬살이를 한 것은 명교에 크나큰 죄를 지은 것이다. 허형은 오륜 가운데 군신 간의 인륜을 몰랐고 오경 가운데 춘추를 몰랐으니 , 이런 자는 종묘의 종사에서 위패를 없애야 마땅하고 유럽에서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사대부가 허형이 살던 시대에 태어나 도학에 대한 고고한 담론을 펼치고자 했다면 반드시 산림에 은거해야 했다. (-79-)

고염무와 황종희 ,이웅,부산 등 한때의 위대한 유학자는 모두 '속박과 회유 '의 고통을 겪었다. 망한 명나라의 '충의지사'를 표창하고 유민을 속박하는 것은 원래 새로 일어난 왕조에서 으레 시행했던 공식적인 조치들이니,청나라의 군주 또한 관례를 따랐을 뿐이었다. (-191-)

신음 땅의 처사 예순평은 변란이 일어난 뒤에 처자식과 결별하고 술자리를 마련해서 많은 빈객과 손님을 초청했다. 또 항아리 2개를 사서 교외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항아리 하나를 놓았다. 이어서 통쾌하게 술을 마신 뒤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자 처자식이 울며 따라갔다. 구경꾼이 천 명 가까웠다. 처사는 차분하게 의관을 바로 하고 항아리 안에 앉아 다른 항아리로 위를 덮더니 틈을 메우라고 호통을 쳤다. 그의 아들이 며칠 동안 하아리 옆에 앉아 지켰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자 흙으로 덮었다. (-279-)

옛사람은 글공부를 하는 데 나이를 나누는 방법을 쓰면서 경서를 날줄로 삼고 역사서를 씨줄로 삼아 시간에 따라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서른 살이면 학문을 완성했다. 나도 마흔 살 이전에 반쯤은 질병 때문에 공부를 폐기했고 반쯤에 과거시험 준비에 골몰했다.비록 나중에 발분하려 했지만 정력과 지혜가 이미 점차 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런므로 지금 공허하게 쇠락하여 이루어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어찌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365-)

유민이 고국의 역사를 다루는 환경이 얼마나 흉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표는 바로 청나라 초기에 일어난 '장씨사옥'이다. 유민에 대한 이 대규모 박해 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 가운데는 풍부한 재능을 갖춘 젊은 역사학자인 반정장과 오염이 포함되어 있었다. (-445-)

대개 방이지가 명나라의 회복을 위해 활동할 때는 항상 막후에서 은밀히 게책을 세웠으며 , 실제 그것을 집행하고 연락하는 일은 모두 그의 세 아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246-)

이런 추측은 확실히 흥미롭지만 문헌 증거가 부족함은 어찌 하겠는가! (-532-)

저우쭤런은 "중국 사회에서 부산의 가장 명성이 높았던 부분은 의사라는 점이고, 그 다음은 아마 서예가일 것"이라고 했다. 필자는 부산이 살았던 당시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었던 그의 사적 가운데는 틀림없이 그 외에도 (어쩌면 '그보다 더')의협심이 강하고 의리를 중시한 점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600-)

책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 증오의 시대에 이어 , 생존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명나라가 쇠락하고,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가 중원을 장악함으로서, 명나라 사대부의 유민들은 큰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소위 그들이 추구하였던 선비로서의 사상적 기반이나 동양에 대한 시선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충효에 기반을 둔 국가 이데올로기에 탈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유가 사대부가 추구하였던 아버지는 사라지고, 이민족 청나라 새아버지를 모신다는 것이 죽기보다 어려웠을 것이다. 즉 명나라 사대부는 명나라 멸망의 원인을 규명하고, 나름대로 회복과 학술, 운동을 병행하게 되는데, 그 노력은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실천되지 못한 상황에서,소멸되고 만다. 이 책에서, 증오의 시대와 생존의 시대를 보면, 그들이 어떤 혼란을 겪어야 했는지,역사속의 혁명이 쉽게 되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위 삼국 시대 백제가 무너지고, 백제 유민이 주도한 나라 세우기가 실패로 끝난 것처럼 ,명나라 유민들 중에 사대부들이 추구하였던 노력은 그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고, 흔들리고 말았다.바로 그러한 모습들 하나하나 우리가 추구하였던 견고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황종희, 손기봉,이옹,이들은 유민으로서 천하의 명성을 날리고 죽음 귀 많은 이들이 애도하였고,그들을 기리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에 대해서 분석해 본다느 것으로도 이 책을 읽는 궁극적인 이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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