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덜 든 철학자 - 공학도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의 길을 걷기까지
정인조 지음 / 이분의일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주기적으로 사경을 헤메는 어머니를 집안에서 병간호할 사람을 찾던 아버지는 1959년 초에 고등하교 졸업을 앞둔 형님응 강제로 결혼시켰다. 사정 모르고 시집온 1940년생 형수님은 졸지에 시어머니 병간호 요원으로 차출된 셈이다. 형수님은 어머니가 '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개발되어 회복하실 때까지 20년 가까이 온갖 고생을 하며 시집살이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을 집안일을 하며 보낸 형님은 1960년 진주 농대 축산과에 합격했다. 재학 중에 1960년과 1963년생 두 아들이 태어났고, 이후 1969년과 1972년 생 남매까지 사남매를 슬하에두셨다. (-56-)

1974년 12월, 박정희 유신 정권의 언론 탄압으로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기로 했었던 회사들이 무더기로 해약하고, 그 결과로 동아일보에서느 광고를 채우지 못했다. 그래서 광고를 넣지 못한 부분을 백지로 내보내거나 아예 전 지면을 기사로 채워버린 소위 '동아투위사태'가 벌어졌다. (-113-)

아내와는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던 1972년 1월에 처음 만났다. '한 아의 밀' 모임에서 대구 효성여대 학생이었던 아내를 봤지만 , 모임의 대구지역 회원으로만 알았다. 그 이후에도 여름이나 겨울 방학 주에 열리는 회원 수련회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산병원 약사로 일하던 아내는 '한 알의 밀; 교회 회계를 맡고 있었다. (-171-)

8일 째 외암마을부터 마곡사, 공주, 세종 ,금강, 계룡, 논산, 금산을 지나고 , 12일째 무주에 도착하기까지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오감으로 느끼고 즐겼다. 새로운 걷기 코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이번 걷기의 표어인 '고향 사랑'에 '나라 사랑, 국토사랑'을 추가해야겠다. (-233-)

1991년 7월 25일부터 8월 7일까지 중구에 다녀왔다. 1933년에 시집온 어머니는 1938년경 외갓집 식구가 모두 만주로 이주하여 친정없이 사셨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아버지랑 싸울 때마다 친정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우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해방되면서 남북이 분단되자 어머니는 친정 식구와 재회를 포기하고 지내셨는데 1979년에 친정 조카의 편지를 받았다. 부모님은 해방 후 돌아가셨고 조카들 4남매가 잘 살고 있다는 기쁨과 슬픕이 교차하는 소식에 누물을 흘리셨다. (-299-)

부천희망재단 이사장 정인조 이사장의 자서전 『철이 덜 든 철학자』에는 우리가 느껴보지 못했던 100년전부터 최근까지 우리의 삶을 기록해 놓고 있었다. 그건 1919년 3월 1일 민족독립을 위한 해방운동이 시작되었던 그 시절의 암울한 일상, 전쟁 통에 ,가족이 실향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강제 결혼, 고단한 시집살이, 그리고 사는게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의 팍팍한 삶이 이해가 갔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닌 우리 할아버지,할머니의 삶이기도 하다. 하얀 옷을 입고, 언제나 의관을 갖추면서 살아왔던 이들의 삶은 공교롭게도 배우지 못한 삶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저자 정의조는 1971년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에 입학하여, 나름 서울에서, 경제적 기반을 갖추면서 살아왔다. 공학도에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것은 18일간 500여 키로미터의 거리를 두 발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대우중공업, GS VCaltex,플랜트 감사로서, 감리회사 Global21(주) 창업 및 대표이사로 20여년 동안 공학도로서 현장을 누비며 살아왔다.여기서 놓칠 수 없었던 것, 코로나 19 펜데믹을 극복하기 위해서,스스로 자처한 길이 고향으로 가는 긴 여정이었다.단순한 걷기가 아닌,1km 당 100만원을 기부하는 의미있는 걷기였으며,자신의 과거의 삶을 돌아보는 희마으로 채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희망이란 단순히 얻어지지 않았다.아픔과 슬픔,인내와 고난을 자쳐하면서, 스스로 만들어낸 희망이다. 아내와 만나 결혼하였고, ,저자의 어머니의 친정식구들이 만주로 모두 떠나야 했던 과거의 이야기,저자의 가치관,인생관에는 해방 전후의 삶이 있었으며,가족사까지 삐곡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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