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
진하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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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기 전까지만 해도 태미는 그림에만 몰두했다. 쌓여가는 그림을 볼 때 마다 속상하고 막막했지만 좌절하진 않았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래, 누구에게나 때는 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지역사회특별전에서조차 태미를 초청하지 않았다. 태미는 작업실의 비싼 월세, 잘필 후의 허전한 시간을 메우느라 몇 개의 미술반을 개설했다. (-10-)

아파트 놀이터엔 언제나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루키도 놀이터를 좋아해서 유치원을 마치자마자 놀이터로 달려갔다. 대체로 집 앞이었지만 아닐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초등하교 건너편의 모래 놀이터를 가장 좋아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흙먼지가 날리도록 뛰어다녔다. 모래가루가 황사보다도 더 뿌옇게 일어나도록.. (-69-)

분명히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작업실은 어두웠다. 한나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탁자에 내려놓고 다시 한번 이정대를 불렀다.

선배?

아무도 없었다. 아래층에 틀어놓은 재즈음악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작업실을 살펴보는데 문이 무거운 소리르 내며 저절로 닫혔다. 작업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107-)

네 큰고모가 오해한 거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는 돈 때문이라고 했다.건축일을 하던 작은 아버지가 손대는 일마다 망하자 그 빚을 감당하던 작은 어머니마저 주저앉은 거라고.이혼하지 않았더라면 작은 어머니는 지금도 빚을 갚으며 살고 있었을 거랏고. 작은 어머니는 넉넉한 집안의 장남과 재혼했다. 맞벌이였는데도 그 집안의 모든 제사를 책임지며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다. 설익거나 타던 호박전이 그림처럼 예쁘게 부쳐졌을 때 작은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를 떠났다. (-166-)

남자 아이들이란, 작은 어머니가 핸드배글 고쳐 메며 으르렁대듯 말했다.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주먹질하고...세상에. 그러다 불까지 지르는 거야. 영주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작은 어머니가 당황하며 굳어진 인상을 폈다. 미안, 미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192-)

소설 『이웃들』은 여섯 편의 짤막한 소설들이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이 여섯 소설이 연작 소설인 이유는 앞에 나오는 인물이 다음 소설에 등장한다는 것이다.소설 「야외수업」 에 등장하는 인물이 「이웃들」 에 다시 등장한다. 이 소설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물인 세상을 담고 있으며, 우리가 왜 속물로 살아가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IMF 이전 우리 삶에는 물질적인 가치 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유지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돈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겼고, 조금 손해를 보는 쪽으로 살아왔다.내가 피해를 보더라도 좋은 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갔고, 넘어갔다.

IMF 는 그러한 선택과 관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질이 없으면, 당장 내 삶이 위태로워진다.일자리가 사라지고,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서, 그 이전보다 물질적인 가치에 집착하게 된다. 그 누구도 나르 챙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에,불안과 공포가 여실히 느껴졌고, 속물로 살아가는 것이 내 삶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소설 여섯 편에서, 주인공들이 돈과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렇다. 특히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릴 때,그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게 되고,그것이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 소설에서, 네명의 고모 밑에서 성장해왔던 어린 준왕과 , 준왕의 엄마인 작은 어머니, 그리도 또다른 주인공 영주가 등장하고 있었다. 한 가정이 예기치 않은 이유로 이혼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내가 누릴 수 있는 책임과 권리가 소멸될 수 있다.영주가 속물로 살아갈수 박에 없는 이유다. 우리가 삶아가면서, 나이가 들어갈 수록 속물이 되고, 속물이 되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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