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 -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지원사업 선정작
윤관 지음 / 헤르츠나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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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남은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들 녀석이 아빠 하며 깨운다.

어마 무릎 베고 귓밥파는 꿈

누룽지 같은 엄마 냄새

호박꽃 같은 엄마 냄새

꿈속에서 잠이 들며

엄마, 엄마 하였는데

나인지 아들인지 모를 녀석이

아빠하며 잠을 깨운다.

반쯤 깬 현실에선

압자 하며 달려드는 녀석

반쯤 남은 꿈속에선

엄마 하며 안기는 녀석

그 반토막 사이에서

사라지는 아들이

살아가는 아들을 안아준다.

저도 엄마, 엄마 하며

울고 싶었는데. (-17-)

불알친구

어둑해질 무렵

어두운 놈들끼리

어두운 것 하나씩을 꺼내놓고

전구알처럼 환해진다.

감히 사장을

감히 마누라를

감히 인생을

꼼장어 서넛이

몸을 섞으며 가볍게

익어가고 있다. (-28-)

붓꽃

더 이상 아무 것도 쓰거나 그럴 것이 없어

뼈와 살을 바꾼 붓 한자루

천지 간에

흔들리는 바람으로

서 있네. (-117-)

나머지

한도가 얼마 남지 않은 카드 선생께서

달마다 토악질을 해대더니 마침내

숨을 거두셨다.

달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누구보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누구보다 뼈아픈 충고지를 해주던

고지서 양반들이 풍채 좋게 쌓여간다.

한 번도 꿈꾸어 보거나 상상해 보지 않은 삶을 살면서

요것도 추억이 될거라는 확신을 한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잘라먹는 도마뱀처럼

모를 일이지 내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슬 뺀 삶의 나머지가 너인지도

겨우 반올림하여 기어이 넘어가도 맨 끝자리에 불과한 나머지가 나인지도. (-144-)

쓸모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 복잡하고,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쓸모'라는 단어였다. 내가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을 때, 그 순간 나는 새로워질 수 있다. 쓸모가 있다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세상에 내가 쓸모 있어진다고 믿게 된다. 시집 『내가 섞이지 않은 나無』 에서 쓸모라는 단어를 찾아내어서, 나에게 필요한 인생을 주섬주섬 담아보고자 하였다.

첫번째 나온 시는 엄마와 그리움에 관한 시다. 잠 자는 동안 엄마 꿈을 꾸는 아빠는 아들이 갑자기 원망 스럽다. 엄마 를 그리워 하였고, 모처럼 엄마가 꿈에 나왔으리라, 그런데 그 순간 아들은 아빠를 찾는다. 그로 인해 아빠의 마음으은 허탈과 허무함이다. 이 시집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 되고, 감동과 슬픔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부모는 내 곁에 있고, 부모는 언젠가는 내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해 견뎌내야 하는 남은 생에 대해서, 엄마의 비중은 매우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유관의 시를 읽으면, 누군가를 갑자기 그리워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이다. 누구나 보고 싶은 사람, 기억하고 싶은 사람, 그리워 하게 되는 사람, 그 사람들만 볼 수 있다면, 함께 소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고,나에게 필요한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시인 윤관은 쓸모 있는 시를 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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