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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
마거리트 히긴스 지음, 이현표 옮김 / 코러스(KORUS) / 2023년 4월
평점 :





라이트 대령이 증오에 찬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한 마디 경고도 없이 한강 인도교를 날려버렸다. 서울시의 대부분 지역이 아직 한국인의 수중에 있는데 너무도 빨리 교량을 폭파했다. 자국의 많은 군인을 실은 트럭들이 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다리를 날려버릴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수백명이 자국민을 살상했다. " (-34-)
나는 처치 장군에게 물었다.
"우리가 공세로 전환하게 되는 시점이 언제쯤 될까요?"
"아,네 ,2주 정도 ,아니면 아마 한달이면 될 겁니다."
그러자 키이스 특파원이 물었다.
"그러나 소련인이 개입하면요?"
"그들이 개입하면, 우리는 그들도 역시 격퇴할 것입니다." (-63-)
인천상륙작전에는 260척의 군함이 참여했다. 우리가 탄 수송함에 앞서 6척의 순양함, 6척의 항공무함을 포함하여 60척의 전함이 먼저 출발했다. 구축함들은 괄목할만한 활약을 했다. 6대의 구축함은 적의 해안포병중대의 사격을 유도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했다.이는 적이 해안방어포의 위치를 노출함으로써 아군 비행기들과 대형 전함들이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이런 기만술은 성공적이었고, 구축함은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48시간 동안 대형 함포사격이 해안을 강타하여 적의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176-)
해병들은 조립교를 공수받아 설치해야만 했다. 그들은 최단시간 내에 정확하게 그 일을 해냈다. 여덟 뼘 너비의 디딤판식 조립교가 공군 대형수송기의 커다란 복부에서 밀려나와 밑에서 대기하고 있는 해병대 공병들에게 전달됐다. 낙하산에 매달려 있었지만, 땅에 떨어지자 지표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나 손상되지는 않았다. 임시교량 설치 계획은 이렇게 추진될 수 있었다. (-240-)
리지웨이는 우려 섞인 어조로 답변했다.
"우리가 그러한 양보를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아실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에 제트기가 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들을 복구하고 개발한다면,나로서는 일본의 안전을 책임질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는 현대 군용기의 운항 속도와 지리적 위치 덕분에 북한에서 출격한 항공기가 일본을 폭격하거나 기총소사하는 등 끔찍한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304-)
이렇게 위급할 때, 미 해병대 장성이 작전실로 걸어들어오더니 해병대 조종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말을 했다.
"매우 중요한 정보다. 우리(미 극동군사령부) 가 만주의 중공군 보급기지들을 송격하는 것리 금지되었다.그뿐만 아니라,워싱턴은 방금 스트레이트마이어(George Straqtemeyer, 1890~1969,당시 미극동군사령부 공군 사령관)의 압록강 다리 폭파 계획도 허가하지 않았다. 우리 공군이 출격 준비를 완료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369-)
마거리트 히긴스(: Marguerite Higgins, 1920년 9월 3일 ~ 1966년 1월 3일)는 미국인 종군 여기자다. 그녀는 1950년 6월 25일,북한군에 의해 처들어온 한반도 한복판에서 육지와 하늘, 바다에서 벌어진 잔혹한 6.25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으며, 3년 이상 끌어온 한국 전쟁의 초기 6개월간, 1950년 12월까지, 한국전쟁의 양상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었다.그것이 책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이다.
전쟁, 종군기자 하면,남성을 먼저 떠올린다.하지만 마거리트 히긴스는 남성종군기자 못지 않은 협상력과 외교력, 그리고 남다른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하 곳에 거침없이 들어갔고, 특종을 건졌다.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남자 일색의 군인들 눈에, 아리따운 종군 여기자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거리트 히긴스 는 삶과 죽음이 겹쳐지는 전쟝에서, 군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전쟁의 한가운데,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악취나고, 더러운 한국전쟁, 남한과 일본에 주둔하였던 미군은 한국전쟁을 일찍 종식시킬 수 있을 거라고 속단하게 된다. 한강 인도교 다리를 끊고 도망친 남한의 이승만 정부가 그녀에겐 이상하게 보였다.나라의 국운을 지켜야 한 대통령이 나라를 버리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한은 북한 군에 의해 남으로 남으로 쉽게 밀리게 된다. 사선 끝에 선 피난민들이 상황들, 먹고 자고, 씻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마거리트 히긴스 중군여기자에겐 색다르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편 미군은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 전쟁의 변수에 소련군을 우선했다. 3주 안에 전쟁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1950년 9월 15일 멕아더 장군이 이끄는 인천상륙 작전 성공 이후 서울 수도를 수복한 것으로 인해 한국 전쟁을 승리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해전술로 무장한 중공군의 기세는 미군의 저력을 막지 못했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공군은 미군을 상대로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고 싶으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마거리트 히긴스 가 보았던 전쟁은 쉽게 끝날 거라고 예상할 수 없었다. 무명옷을 입었던 남한 사람들을 기이하게 처다보았을 마거리트 히긴스 종군 여기자는 실시간으로 한국전쟁의 양상을 전세계에 타전하였으며, 책 『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은 한국전쟁 한복판에 있었던 맥아더 장군이 보여주었던 리더십과 전략 미스,그리고 한국전쟁 총사령관으로 맥아더가 물러나고, 리지웨이장군으로 교체된 것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