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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칭 더 보이드
조 심슨 지음, 김동수 옮김 / 리리 / 2023년 6월
평점 :
1985년 5월 19일,베이스캠프. 간밤에 서리가 많이 내렸으나 아침은 하늘이 맑다. 나는 이곳에 적응하려고 여전히 노력중이다. 두려울 정도로 외지지만 동시에 짜릿하기도 하다. 소란을 떠는 산악인 무리도 헬기도 구조도 없는 깊은 산속의 이곳이 알프스보단 훨씬 낫다...이곳의 일상은 무척 단조롭고 현실적이다. 여기선 사건과 감정을 되새길 필요 없이 그냥 지나가게 놔 두면 된다. (-22-)
"능선은 보지도 못했어. 왼쪽 멀리서 능선의 끝부분을 언뜻 봤을 뿐이야. 무슨 예고 같은 것도 없었어. 균열도 없었고, 올라오자마자 그냥 뚝 떨어졌어. 가장자리에서 10미터는 무너진 것 같아. 내 뒤에서 말이야.아니면 발밑일지도 몰라. 어쨌든 함께 떨어졌어. 너무나 갑작스럽게!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으니까. 내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어."(-79-)
사이먼은 손을 뻗어 내 안전벨트를 잡더니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끌어당겼다. 얼마나 조심스럽게 내 몸을 돌려줬는지, 내가 그의 옆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사면으로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매달린 스크루 옆에 하나를 더 박아 내 몸을 걸고 나서, 얼음을 파서 만든 자리로 내 다친 다리를 끌어 디디게 해줬다. 그때 문득 ,그가 나를 어떤 고통에 빠뜨렸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 배려는 "괜찮아.나는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야.이런 건 당연한 거지" 라고 조용히 말하는 것같았다. (-134-)
내가 크레바스를 빠져 나오는 것을 만약 누군가가 봤다면 웃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머리가 눈 위로 쑥 올라오더니 두더지처럼 바깥을 두리번거리며 훌터본 모습이었을 테니까. 나는 아이스액터를 크레바스 속의 얼음에 그대로 박아놓은 채 한 쪽 다리로 서서 머리를 바깥으로 내밀었다. 경치가 너무나 멋졌다. 빙하를 둘러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환상적이어서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낯익은 봉우리들이 이전엔 결코 알아채지 못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204-)
눈송이가 얼굴에 무딪혔고 바란에 옷이 퍼력였다. 밤은 여전히 검은색이었다.얼굴에 붙어 있던 눈이 녹은 차가운 물과 뜨거운 눈물이 뒤섞였다.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내 힘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겐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무라도, 어두운 밤의 폭풍이 나를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많은 일로 울었다. 고개를 가슴에 떨구고 어둠을 무시한 채 분노와 고통이 울도록 내버려뒀다. 나에겐 너무나 가혹했다. 나는 계속할 수가 없었다.이 모든 것이 너무나....(-276-)
작가 조 심슨의 자신의 등산, 산행,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 『터칭 더 보이드』은 생존과 목숨을 건 등산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사이먼과 조 심슨이다. 들은 페루 안데스 산맥, 6000 미터가 넘은 설산, 차가운 6,344M 의 사울로 그란데,6,260M 의 사울로 치코로 향하고 있었다. 남미 페루 땅에서,그들이 바라본 설산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산행과 등산의 의미는 아슬아슬한 크레바스 위를 걸어가는 자신만의 고독과 어둠과 함께 하는 처절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네번째 비박 예정이었던 설동 앞에서 ,조잔 당하고 말았다. 하나의 로프에 의지하여, 두 사람은 서로 밀어주고 서로 당겨주는 관계였다. 헬리콥터도 다다를 수 없는 곳,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생존을 믿어주고,당겨주는 그런 사이였다. 하지만 사이먼은 단 하나의 생명줄 로프를 끊고 말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끊지 않으면 둘 다 죽어야 하는 운명 속에서, 바람과 안데스 산맥 눈보라를 견뎌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은 절대적인 자연 앞에서 겸손하게 된다. 처음 등산에 나섰을 때, 두 사람은 언약은 큰 의미가 없었다. 오로지 둘 다 살아서 돌아오느냐,아니면 둘 다 죽거나, 아니면 혼자만 살아남아 돌아오는 길 밖에 없었다. 로프를 끊었지만, 조 심슨은 절룩거리는 두 다리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순간에 살아남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오게 된다.그 과정에서, 서로가 처한 현실, 그 현실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생존은 자연환경 속에서, 속단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의 철두철미한 계획은 자연이라는 변수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