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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용감해질 나이 - 더 늦기 전에 더 잃어버리기 전에
김희자 지음 / 대경북스 / 2023년 6월
평점 :
아내는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더이상 요구하지 않았습니다.이렇게 남편에게 맞추어 하나하나 포기하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일, 남편 뒷바라지, 자잘한 시댁일까지 집안팎의 일이 모두 아내의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 (-4-)
문화충격은 이것뿐만아니었다.무엇을 하라고 시켰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사투리 덕에 알아듣을 수 없었다. 고모부터 큰 고모할머니까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척들이었다. 남편이 육사 출신이니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만큼이나 높은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지, 쳐다보는 눈들은 매섭기만 했다. 친정에서는 싹싹하고 무엇이든 똑 부러지게 잘하는 내가 이게 웬일인가? 하는 것마다 맹하고 어눌했다. 경상도 사투리는 서울 말씨와 사뭇 다르니, 싸우듯 야단치듯 무뚝뚝한 톤으로 말을 하면 듣는 나는 어느새 주눅이 들었다.
갓 시집온 두 동서는 뭐든 서슴없이 척척해낸다. 새신랑들은 부엌에서 일하는 동서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눈치를 살피며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슬그머니 큰어머니께 귀띔을 한다. (-37-)
그대까지만 해도 바퀴버레 연막탄이 있는 줄 몰랐다. 연막탄을 피우고 서너 시간이 지나면 온 집안이 연기로 자욱하다. 그러면 구석구석 숨어 있던 벌레들이 다 밝은 곳으로 나와서 기절한다. 아이들과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 이 징그러운 것들을 빗자루로 쓸어 담고 걸레질을 하고 사방에 양초를 켜놓고 냄새를 없앴다. 그리고 냄새나는 몸을 깨끗이 씻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편과 아이들을 맞이한다. 이 짓을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번을 반복하니 한밤 중에 나와 불을 켜도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이제껏 친정에도 시댁에도 친구에게도 이 창피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98-)
남편에게 내년부터는 결혼기념일 선물 대신 근육을 만들어 부부 사진을 찍자고 제안을 했다. 지금까지 남편과 함께 같은 목표를 두고 함께해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묵묵부답, 대답이 없다. 쉽게 허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무반응이다. 남편에게 무엇인가 요구하면 남편은 거절도 허락도 빨리 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계속 조르다가 "당신이 안 찍으면 나 혼자라도 찍겠다." 고 일단 협박을 했다. (-208-)
나의 미래를 남편에게 몽땅 걸었다. 남편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순수하면서도 결코 행동이 경솔하지 않다. 표현은 어눌했지만 감정의 요동이 없다.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이것이 장점인지 몰랐다. 남편은 어느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았다, 진급 시기에도 사람을 비교, 시기, 질투도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 바라보고, 자신과 경쟁하고, 자기 자신만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만 전념하는 말없는 성실한 사람이다. (-257-)
작가 김희자는 육사생도인 남편과 결혼하여, 44년간 부부생활 끝에,남편을 정성으로 예편했다.처음 결혼할 당시, 경상도 남편의 시댁식구 중에 결혼하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그것은 엄격하고, 성실한 시댁을 보면서 움츠러들고 만다. 시아버지의 모습 뒤에 남편의 그림자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손종하고,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살아온 40여년간의 결혼생활을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으로 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경단녀였던 저자가, 과학 수업을 진행하고, 인공지능 로봇,AI관련 로봇기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데 매진하였으며,자신을 위한 삶은 어느 정도 포기하며 살아왔다.
저자가 말하는 용감함이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용감함이다. 아이들을 위해서,포기해왔던 일들,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자신의 꿈조차도 포기했다.이기적인 삶보다 맞춰가는 삶을 우선 선택했다. 이제는 용감하게 그꿈을 되찾기로 했다. 내 삶에 대해서,용감해지기,창피함,부끄러움, 수치심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내 가족에게,내 가정에 해가될 것 같아서,참았고,견뎌왔던 지난날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으며,이제는 오픈된 삶, 열린사고로 세상에 다가갔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바디 프로필 사진 찍기도, 용감해지는 저자의 삶 그자체였다.누군가를 의식하며 살아온 이들이라면 바디프로필을 찍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을 아끼고,나를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과감하게 바디 프로필 찍기를 시작하였고,남편과 함께 몸가꾸기를 이어왔다. 그동안 내가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자 용기였다.그 용기를 내면에 채워 나감으로서,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또다른 이유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