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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맛 - 식탁과 세상을 연결하는 비건 살림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이라영.전범선 지음 / 동녘 / 2023년 6월
평점 :
이렇게 의구심이 뭉게뭉게 피어나는데 내 책꽃이에 뤼스 이리가레 Luce Irgaray 와 마이클 마더 Michael Marder 가 쓴 『식물의 사유』 가 있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이 식물에 대해 서신으로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살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편지는 안 읽는다고 말했는데 ,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들의 편지를 이미 일고 있었다. (-6-)
한국에서 정제염을 생산하는 곳은 울산의 한주소금 공장밖에 없어요.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인 후 증발시켜서 만드는데요. 저는 위생이 걱정되었어요. 염전에 PVC 장판이나 타일을 깔아놓고 그 위에서 건조를 하거든요. 천일염에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광고하는데, 사실 그건 염화나트륨이 아닌 불순물이 많이 껴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68-)
요즘 세상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중입니다. 풀밭에 뚜그리고 앉아 쑥을 뜯는 중년 여성들을 자주 봅니다. 어릴 때 친구네 집 계단 아래 그늘에서 냉이를 뜯던 생각이 나요.그 친구는 '양옥집'에 살았고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현관문이 있는 구조였죠.그 계단 아래에는 포장되지 않아 흙이 드러난 땅이 있었는데 그곳에 냉이가 자랐어요. 하굣길에 종종 그 친구 집에 들러 함께 냉이를 캐곤 햇답니다. 봄이면 냉이 향이 코끝에서 맴돌고 그 친구 생각이 납니다.그리운데 제가 프랑스로 떠난 이후 연락처를 몰라 답답해요. (-137-)
잊히지 않는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아마 열한 살이나 열 두 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어쩌다 그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집에 온 동네 아주머니에게 제가 "아줌마,제 동생이 몇 년 전에 죽었잖아요."라고 했어요. 제 눈에는 키가 커 보이던 그 아주머니가 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어요."차라리 잘된 거야. 살았어봐. 네 엄마가 더 고생이지."
죽은 아이는 장애가 있었거든요. 장애가 있는 몸은 살아도 '엄마가 더 고생'이기 때문에 죽는 게 '차라리 잘 된' 것이라는 이 말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는 저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받아들이려고 애썼습니다. (-192-)
어떤 대수롭지 않은 말이나, 어던 모습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아서,영원히 장기기억으로 남을 때가 있다. 새롭거나, 나의 가치관에서 어긋나서, 불편할 때, 내 기대치,나의 꿈과 엮이는 장면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기억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것은 꿈이 될 수 있고,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뒤에 숨겨진 죽음에 대한 장면들이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도 그러하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 인류가 만든 문명이라는 고유의 가치가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죽음에 근접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시작은 우연이었다. 책꽂이 위에 꽃혀진 한 권의 책, 식물의 사유였다.그 책을 펼쳐 들고, 두 사람의 작가, 이라영과 전범선은 식물에 대해서 쓰기로 결심하였다. 비건, 베지테리언, 채식주의자,기후위기에 대응하여,인간이 만든 식습관이다. 비건을 우리는 친환경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하건만,이 책에서는 단호하다. 채식주의자도,문명의 파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파괴를 줄일 뿐이다. 인간의 생각 너머에 숨어 있는 파괴의 본능이 결국 인간을 절멸 시킬 수 있었다. 한 인간의 오판이 인류 전체에 위기를 가져온 역사가 존재한다. 두 사람의 식물에 댜한 대담을 ,우리 일상 속의 소소한 식물의 관찰에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 또한 식물에 관한 기억을 떵오릴게 했다.방치된 놀이터가 철거되고,그 공간이 공터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공터에 흙이 덮혀지고, 잡초 사이에 텃밭이 만들어지게 된다. 동네 주민들이 소소한 식물 씨앗을 심었고, 배추,상추, 고추,가지를 심었다. 인간의 삶에서,식물의 사유,식물을 추구하는 삶을 버릴 수 없다. 식물의 삶은 인간을 살리는 삶이며,인간의 살림을 위한 삶이다.그리고 인간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