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도
최정삼 지음 / 푸른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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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건대 단언하지만 , 시어머니가 떠나시고 아이가 해외로 학교를 간 뒤 단 둘이 살면서도 내게 평화란 없었다. 그저 시무룩해 있는가 하면 금세 들떠 즐거워하고, 그런가 하면 또 어느새 울화를 터뜨렸다가 다시 금방 우울해하는 그는 한 사람이되, 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다 합쳐놓은 것보다고 훨씬 더 내게 감당해 내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23-)

천천히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곧추세운 트렌치코트의 깃 안으로 스카프를 고쳐 매면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 눈길은 안개에 잠긴 바다처럼 흐릿한 물기에 촉촉이 젖어 있었다. 여자의 눈은 마치 '이제는 돌아갈 수 없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이어 그는 불현듯 거기서 어떤 낭패감 같은 것을 느끼고는 반사적으로 빠르게 시선을 거두어들였다.그리고 갑자기 생각난 듯 낮은 소리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99-)

만약 그가 죽으려고 했다면, 그리고 정말 교회에 불을 질렀다면 그가 불을 지르려 했던, 또 죽으려 했던 이 교회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에게 있어서 그 노인이 가졌던 환상 속 섬과 김에게 있어 그가 가졌던 현실 속의 교회는 얼마나 한 거리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이런 상념에 사로잡혀 잡다한 생각들을 허우적이고 있는데 언뜻 이상한 느낌이 있어 고개를 들었다. 사택과 담을 사이;한 그 모퉁이였다. 거기서 누군가가 내 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고래를 들어 그 쪽을 쳐다보자 그 뒤편 수풀 속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사라졌다.

그런 그가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지만 한낱 벽지 섬 학교의 직원에 불과한 박경희와 결혼한다는 소식은 내게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섬학교의 교사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와중에도 일말의 우월감이 있었던 것인지, 나는 곧 한 편으로 그를 향한 이제까지의 나의 소심과 겸허를 뼈아프게 후회하였다. (-257-)

고벽(古碧) 최정삼의 『백야도』 에는 여섯 편의 둥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여섯 편은 『어머니를 찾아서』, 『녹킹 온 헤븐스토어』, 『그들을 위한 레퀴엠』, 『조난』, 『떠오르지 않는 섬』, 『백야도』 다 .이 여섯 중단편 소설에는 공통점 두 가지가 잇었다.그것은 죽음 그리고, 섬이다. 저자는 췌장암4기 선고 후 44번의 항암치료 후, 2년 가까이 투병 중이며,그의 유작이 될 번 한 소설이기도 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그가 바라보는 문학에 대한 치열한 탐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그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그 중 마지막 소설 『백야도 』 에 눈길이 갔다.

소설 『백야도』의 백야도는 여수에 소속된 사람이 사는 유인섬이다. 유인섬이지만 사람이 적은 유인섬이며, 섬학교 선생님이 주인공이다. 교육자로서, 섬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일한다는 첫 번째 의미와 , 승진이 남들보다 빠르다는 두 번째 의미였다. 인생의 항로에서, 첫 번째 항로를 놓치고, 주인공이 걸어가는 마지막 인생길은 섬마을 시골 학교 선생님이었다. 회계사를 꿈꾸었지만,환상에서 멀어지고, 꿈을 향하여,이상을 꿈꾸며, 시골 학교 선생님이 되엇던 건, 스스로의 결정에 있었다. 그 중대한 결심 속에서,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와 변곡점 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새로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고,그 선택된 것에 네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 때로는 사람드과 다양한 부침이 존재하고,그 안에서, 삶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 죽음의 형태는 다양한지만, 그 죽음이 남긴 형태는 동일하다. 떠난 자가 남겨놓은 어떠한 것을 남은 자가 어떻게 정리하고 수습하느냐이다.주인공이 결혼에 대해 느꼈던 자괴감과 후회, 결국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생에 왔다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저생으로 가는 것,그것이 우리의 삶이며, 고벽(古碧) 최정삼 께서 우리에게 남긴 인생의 숙제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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