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 그립고 그립다
조병준 지음 / 프리즘(스노우폭스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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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년 6개월간의 치료와 요양을 마치고 취직을 했다. 6개월간 돌보던 보리를 이제는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문경 마성면 사무소 뒤,바람이 숭숭 들어오던 촌집에 살던 때였다.근처 어린이집에는 자리가 없었다. 취직한 회사는 상주, 출근길에 점촌시내에 들러 보리를 맡겼다가 퇴근길에 데려와야 했다. 모집기간이 아니라 시내에 빈자리가 없었다. 어렵사리 구한 곳은 조명이 어둡고 시설이 열악했다. 그러니 자리가 남아있겠지. 어쩔 수 없었다. 6개월 내내 품에 안겨있던 보리는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맞벌이 부부의 비애였다. (-20-)

누군가 '보리 아버님'을 다급하게 부르는구나

달려가는구나

아이가 쓰러져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구나

이미 바닥에 붉은 게 고였구나

아침에 내가 입혀준 옷이구나

형들도 보고 있겠구나.(-73-)

고향집에 다녀왔어. 할아버지가 전에 없이 많이 아프셔.그렇지만 아빠 형제들은 드디어 화해를 했어. 그리고 앞으로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기로 함께 결심했어.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어.이제 시작에 불과해. 그러나 엄청난 시작이지. 보리야, 고마워. 보리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편지도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말도 하지 않았을거야.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이야.집으로 돌아와서 아바는 진인사, 대천명 형아한테 너희들도 아바 형제들처럼만 지내라고 했어. 그 말이 하고 싶었어. 그게 아빠 꿈이었지. 꿈을 이뤘어. 보리가 빛을 남겨주었어. (-114-)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려고 했다.

사고를 내고 자리를 떴던 가해자는 얼굴로 용서를 구했다.

거짓말을 한다면 우주가 그냥 두지 않을 터

거친 손을 잡아 주었다.

교사들은 장례식장에서는 조아리며 죄송하다고 했다.

함께 눈물을 흘렸다.

나중에는 오라고 하지도 않을 유치원생을

아버지가 데려왔다 돌보지 않아 서고가 났다고 했다. 가족캠프니까 데려와도 된다 해놓고

그동안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 수없이 노력해 보았다.

이제는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가해자를 용서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용서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 뿐

미움이 올라오면 보리를 생각하겠다.

그건 늘 하는 일

오직 그들을 미워하고 자학한 날들을 용서하고

앞으로도 그럴 나를 용서한다.

용서하지 못할 나를 용서한다.

두려움 많고 ,실수 많고, 비겁하고, 부족한 인간이다. (-216-)

산다는 것은 죽음을 견디는 일이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황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타인에게 눈치 보지 않게 되고, 펑펑 울게 된다. 나의 소중한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땐 더욱 그러하다. 삶이라는 것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운명이지만, 갑자기 예고되지 않은 사고로 이별통보할 땐, 특히 그러하다.

진인사, 대천명,그리고 보리, 넷째 마루까지 네 아이 중, 세째 보리만 이세상에 없었다. 학교 행사에 가족캠프에 , 가족도 와도 된다는 통보에 보리를 데리고 갔던 보리 아바 조병준님, 그 행사에서 보리는 이별의 강을 건너게 된다. 운전자는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해 보리를 미쳐 보지 못하였고, 그로 인해 보리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들어갈 때 다르고,나올 때 다르다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누구도 보리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가해자도 마찬가지였다. 보리의 죽음 앞에서, 다들 면피하였으며, 그것이 보리 아빠에겐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뺑소니는 아니었지만, 보리는 이제 돌아올 수 없다. 운전자의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만 4년 100일을 살았던 보리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스스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만 굴뚝 같았을 것이다. 그느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부질없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다간, 그로 인해 학교에서 왕따가 될 것 같은 기분, 보리의 죽음보다 현실을 자각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보리 아빠는 자신을 더 미워햇을 것이다.보리를 치인 운전자는 용서하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아니, 용서를 하면, 보리에게 어 큰 아픔이 될 것 같았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에게 아픔이 , 누구에겐 슬픔이 밀려와도, 정작 그 순간이 찾아오면, 벗어나고 싶어진다. 보리가 잠들어 있는 묘지 앞에서, 아빠가 어린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은 누그에게 말할 수 없는 상처였으며, 회한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죽음 앞에서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롯이 내 몫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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