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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한 과학자의 위대한 꿈
이종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3년 5월
평점 :
"마흐는 뉴턴의 사고방식이 물리학의 최종적인 기반이라는 신앙을 뒤흔들고 , 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주장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마흐처럼 모든 이론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39-)
아인슈타인을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에르빈 슈뢰딩거와 베르너 카를 하이젠베르크가 등장한다. 슈뢰딩거는 드브로이의 파동을 표현하는 수학적 개념을 재해석해 파동 방정식을 제시했으며,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내 전자의 상황을 잘 알려진 불확정성 원리로 설명했다. (-69-)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광속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기초를 두었다. 광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속력은 더해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다는 말이다. 이는 광속에 이르면 물체가 발사하는 속력에 광속이 전혀 영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의 이 논문이야말로 수많은 지구인을 좌절시킨 결정적인 주제이다. 현재의 우주 공간에서 빛의 속도를 넘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 우주의 수많은 분야에 족쇄를 채웠다. 아인슈타인의 이 결정적인 지적으로 수 많은 아이디어가 싹도 트지 못하고 폐기되었음는 물론이다.
그의 단언은 아직도 수많은 검증에서 '참'이라고 증빙되고 있다. 특히 지구에서 16만 광년 떨어진 마젤제란 대성운에서 폭발한 초신성의 빛이 1987년 2월 마침내 지구에 도착하면서 아인슈타인의 족쇄가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초신성에서 나온 광속으로 움직이면서 질량을 갖지 않는 소립자인 중성미자(neutrino) 가 지구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124-)
당시에는 특허 신청이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바쁜 직장이 아니었지만 스위스의 특허 심사가 다른 나라와 다소 다르다는 점이 아인슈타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특허 심사 기준을 '지금까지와 다른 것'에 두었지만, 스위스에서는 '뛰어난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스위스에서는 특허를 신청해도 그 내용이 이전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
그들은 '3종의 라듐 겅위체'가 바륨 그 자체임을 파악했다. 우라늄을 중성자로 조사하면 적어도 세 종류의 바륨 동위체가 생겨나며, 이것들은 붕괴해서 란탄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핵이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원자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기본 이론이다. (-242-)
E=MC2 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독일 태생의 미국 이론물리학자이다. 그의 물리학적 업적은 고전물리학자 뉴턴의 업적을 넘어서고 있었다. 스위스 특허청에 일했던 아인슈타인은 첫번 째 아내 밀레바 마리치 (세르비아어: Милева Марић , 독일어: Mileva Marić , 1875년 12월 19일 ~ 1948년 8월 4일),두번째 아내 엘자 레벤탈 이 있었으며, 1912년에서 1919년까지 엘자 레벤탈과 불륜관계였다.
그의 여성관계는 1919년 밀레바 마리치와 이혼 후에서 여느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현대물리학에서 특별한 존재이다.그가 살았다면, 노벨물리학상을 6개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빛에 대해 이론적으로 검증을 시도 하였고, 인류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갈 수 없는 것을 물리학 이론에 근거하여 증명해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로,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탔으며,그가 남겨놓은 마지막 선물 중력파 검출에 성공함으로서, 2017년 노벨물리학상은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킵 손, 배리시, 바이스 에게 돌아갔다.
이 책을 보면 아인슈타인의 멉적과함께 그 가 남겨놓은 족쇄들도 이해할 수 있다. 유라늄 연구로 원자력 폭탄이 만들어졌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아인슈타인이 동참하게 된다. 이후 그는 유럽에서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살면서, 미국 과학 정책의 자문 역할을 도맡아 하였다. 과학자로서 흑역사도 많이 남겼지만,그가 남겨놓은 물리학적 업적은 인류의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대한 역할을 도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