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너무나 뻔했다. 지역사회의 지배세력은 한국사회의 그들과 똑같은 뿌리르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엔 친일, 미군정기엔 친미, 이승만정권에선 친미, 반공의 선봉에서 수많은 민간인학살에 앞장섰고, 박정희 정권에서도 독재에 아부하며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지역사회의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내린 진짜 중요한 결론운 따로 있었다. 우리는 그동안 친일-친미-반공-독재로 이어져온 이력으 근거로 그들을 '우익'으로만 접해왔다. '우익'은 정치적 입장에 따른 분류법이다. 필자가 보기엔 그들의 진짜 속성은 ;기회주의자'였다. 적어도 필자가 주목한 우리지역의 토호들은 그랬다. 만일 그들이 북한에 살았더라면 열렬한 '김일성주의자'가 되었을 게 틀림없다.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통털어 마산 출신의 대표적인 기득권 인사였던 김종신과 이은상만 봐도 그렇다.김종신은 좌파가 대세일 땐 사회주의자였고, 친일이 주류일 땐 친일파였다. 해방이 되자 당시 정국을 장악했던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 문화사업을 벌이다가 미군이 들어와 건준을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탄압하자 다시 우익으로 돌아선다. 이은상은 독립운동가나 친일파를 막론하고 조시나 묘비명을 써준 걸로 유명하고, 백범 김구에게 붙었다가 이승만에게 아부하고, 다시 이승만 정권에 의한 거창 민간인 학살 희생자 비문을 쓰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적을 보였던 인물이다. (-4-)

54년전 일제치하에서 해방된 때도 그랬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다음으로 당황한 사람들은 친일파였다. 오직 일신의 영달을 위해 왜놈의 앞잡이로 나서 각종 일제 통치기구의 감투를 얻어 쓰고 한민족을 탄압한 자들이었다. 일제 때 경방단을 비롯한 각종 친일, 관변단체 임원들과 헌병, 헌병보, 고등계 경찰, 고위 공무원, 도회의원,부회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44-)

뛰어난 로비력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이용범은 이 돈을 다시 자유당에 정치자금으로 제공했고, 54년 5월 20일 실시된 제3회 국회의원 선거에서 , 창원 을구 자유당 공천을 받게 된다.

당초 창원 을구에는 무소속의 김봉재 의원을 악선시키기 위해 국내파 독립운동가 출신이 이기섭을 후보로 내정했으나 이후 이용범으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도 대화요정 김마담이 이기붕에게 그를 적극 천거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40-)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12년간 권좌를 틀어쥐고 있던 독재자 이승망은 끝내 하야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또한 이기붕은 일가족과 함께 집단자살했고, 이승만은 이후 하와이로 망명길에 나선다.

이처럼 3.15 마산항쟁과 김주열 등 어린 학생들의 처참한 죽음에서 촉발한 4.19는 해방 이후 최초로 민중이 정권을 쓰러뜨린 위대한 민권의 승리로 귀결된다.

이는 또한 수많은 민중이 희생된 대가였으며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고 자란다'는 역사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리시켜주었다.

그러나 피의 대가는 민중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4.19 로 집권한 민주당정권은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만한 세력이 되지 못했고, 끝내 일부 정치인들이 5.16 쿠데타로 인해 민주주의는 또다시 긴 어둠의 터널 소게 파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227-)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시대가 열리면서 4.19 직후 마산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벌어졌던 각종 사회운동은 완전히 단절됐다. 통일운동, 교육 민주화운동, 혁신정당운동, 양민학살 ,진상규명운동 등을 주도해온 운동가들은 모두 구속됐고, 지역사회는 표면적으로 지극히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281-)

'정권은 바뀌어도 토호는 영원하다?'

필자가 지역언론에서 13년간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내린 결론이다.'영원하다'는 표현 속에는 짙은 체념이 묻어 있다.그만큼 토착 기드권 세력의 뿌리는 깊고도 질기다. 이 질긴 뿌리를 뽑아내지 않고서는 요즘 유행하는 '지방분권'이 라는 것도 말짱 헛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지 않는 한 지방분권은 결국 지방의 권력자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토호세력의 권한과 입지만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335-)

학살이 있었지 10년만인 1960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후 결성된 마산지구양민피학살자유족회(회장 노현섭)는 학상의 가해자로 11명을 고발한다. 1960년 7월 19일자로 마산 검찰지청에 제출한 고발장에 따르면 당시 학살사건의 주범으로 조영운 전 마산경찰서장 (현 경남교통협회 이사, 경전여객자동차주식회사 근무 중),구중억 전 마산경찰서 사찰형사, 최익주 전 형사반장, 이부종 전 형사, 강상봉 전 사찰계장, 정도환 전 사찰계장, 노장현, 황임 사찰계 형사. 이우정 전 특무대장, 이진영 전 특무계장, 노양환 전 특무대상사 등 11명을 지목하고 있다. (-381-)

2018년 우연히 민주당 당원이 되었고, 만 5년이 지난 상태다. 그 때 당시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었으며, 추미애 당대표 이후 이해찬 당대표가 있었던 시기다. 민주당 당원원이 된 이후 지금까지 별 별 일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한가지 민주당이 민주당 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고 그들에 대해 실망했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경남매일, 경남도민일보에 몸답고 있었던 김주완 기자의 책 『토호세력의 뿌리』를 접하게 되었다.이 책을 읽기 전 ,기대했던 것은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해갈이었다. 지역의 문화원,예총, 바르게살기협회,새마을단체 환경운동 협회 ,전교조 등등 그들의 순수함이 사라지고, 어느센가 정치 세력화되고 있었다. 그 원인이 궁금하였고,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우리 삶이 더 나아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개탄스러움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이 스포츠 경기를 하면, 반일 운동을 적극 나서면서 뒤에서는 친일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들이 자주 나타났으며, 독립운동가의 처우개선에 적극 나서지 않는 기득권의 작태가 한심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소녀상을 세우면서, 왜 이승만 정권에서 전두환정권까지 이어졌던 잔인한 역사들이 해결되지 않은지 묻고 싶었다. 진보를 위한 여러가지 행사에 동참하면서,자본은 보수에 기대는 모습들이 여러차례 나타나고 잇느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환경운동가들의 어용 활동에 정부공공기관의 보조금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특히 보도연맹에 대해서,미군정 체제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 여기에 마산 3.15의거까지 , 양민학살에 대한 역사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알고자 한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현재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현실이 우리 스스로 현재의 삶이 나아지지 못하는 이유,엿가의 퇴보를 마주하고 있느 이유라고 말하였다. 마산 시사에도, 경남의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마산의 역사,그 역사기 이 책에 적혀 있었다. 그들은 역사에, 기득권, 토호세력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과, 고문들, 여기에 빨갱이로 몰아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관련자들을 구속시키거나 감금하거나, 즉음으로 내몰았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진보의 나약한 모습이 민심을 돌어서게 만든다. 마산 3.15 의거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가 있었지만, 다음 해 5.16 쿠데타로 군부정치인기 권력을 잡은 이유, 21세기 지금도 빨갱이도 있고,좌익분자도 있으며, 친일도, 친미,친러,친유투브도 있다. 고인이 된 노무현 대통령의 꿈꾸었던 시대정신,미래의 국가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정권이 바뀌어도, 여당과 야당의 정치 판도가 바뀌어도, 그 중심이 지역공무원과 수많은 관변단체,여기에 보이지 않는 토호세력들이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교체되는 역사가 있었지만, 보수의 부패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진보에 대한 실망감이 다시 보수로 전권이 바뀌게 되는 이유였다.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기회주의자들은 모래성처럼 자신이 진보, 빨갱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념적 가치관에 매몰됨으로서, 우리 사회가 원하는 맑은 미래, 진보가 꿈꾸는 지방 분권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 본질이 흐려지고, 형식만 취하게 되는 원인까지 살펴보고 있었다. 여전히 대한민국 토후 세력들은 이승만 정권의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으며,그들의 추구하는 역사왜곡의 근원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치적 노선에 있다.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친진보성향를 드러내고,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친보수가 된다. 박근혜 탄핵 이후,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되어서, 적폐청산이 실패한 이유는 적폐청산위원회에 속한 이들이 적폐의 대상으로 자세와 태도를 견지하였기 때문에,필연적으로 실패할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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