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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사인은 제가 할게요. 701호시죠?
여자가 말햤다.
-요즘 코로나가 볼펜 만지는 것도 싫어들 하셔서
명주는 여자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자가 사인을 하고 나가려다 거실 한가운데 명주가 덮고 자던 이부자리로 시선을 던졌다. (-10-)
참! 아까 어떤 여자가 701호에 찾아왔던데요?
누가?
공명주란 분을 찾던데요? 함머니랑 같이 살고 있지 않나면서요.
준성은 순간 여자의 얼굴이 긴장하는 것을 보았다. (-80-)
안개 속에서 나는 울었어. 외로워서 한참을 울었어.사랑하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명주는 고개를 쳐들었다. 자신이 자주 부르던 노래였다. 어떻게 젊은 애들이 이런 노래를 아는가 싶어 눈을 껌벅거렸다. 연이어 다시 또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명주는 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114-)
약봉지 상단에는 '황정애 76세' 라고 쓰여 있었다. 명주는 모자와 마스크 속에서 피식 웃었다. 자신의 몰골이 엄마의 나이로 보일 만큼 형편없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명주는 그걸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한 봉지를 뜯어 물과 함께 삼켰다.
집에 돌아와 한숨 자고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때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진천 할아버지에게서 온 문자였다.
<부고>
김병삼 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빈소: 경인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1/12,AM 9시.
031) 6333-6200
(-164-)
준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주의 전화는 그런 준성의 머리를 벌집 쑤시듯 헤집어놓았다. 준성은 무얼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해결할 길은 요원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렌트비까지 내야 할 형편이었다. 준서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시멍으로 대리기사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지난번 자신이 남겨놓은 질문에 댓글이 달려 있길 바랐다. 여러 댓글 중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229-)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의 컨셉은 저출산 고령화시대로 접어들고, 3년 내내 코로나 19 펜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다.의식주가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차상위 계층에 해당되는 701호에 사는 공명주와 차은진,그리고 공명주의 어머니 황정애다. 701호 옆집에는702호에 사는 박준성이 있다.
두 집안은 사로 다른 가정이지만, 주어진 운명이나 처한 현실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자가 사는 아파트의 전형적인 모습이 고층 아파트에, 럭셔리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다면, 701호와 702호가 사는 그 아파트에는 생필품 위주의 상가로 구색을 갖추게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 공명주를 주목하게 된다. 그녀는 이혼하였고,시체 유기까지 했다. 연금도 부정수급하게 되는데,그가 저지른 범죄는 잔인해 보이지만 현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나름 살기 위한 공명주의 발버둥에 불과하다. 뉴스에 나오는 계획범죄와 무관하게 배우지 못하고, 주아진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가정의 전형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가지지 못해서, 가진 것이 없어서,기초생활보호자로 살아야 하는 처지, 죽었지만, 본인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아서는 안된다. 그건 그 사람이ㅈ살아있어야만 공명주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탈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죽은 사람은 죽은 거고, 살아야 하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을 지켜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법을 지킬 이유가 없어진다.내 앞에 놓여진 법이라는 것이 나를 보호하고, 나의 생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702호 박준성의 삶도 공명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고, 박준성은 아버지의 삶까지 떠맡아야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싼 자동차와 박아서 생긴 교통사고 합의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우선이었다. 열심히 살기 위해서,아둥바둥하지만, 현실은 꼬이기만 한다. 차라리 대충대충 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강조하는, 미덕으로 생각하는 정직과 성실한 삶,그것이 박준성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의 삶의 방정식은 호락호락하지 않는 세상은 말해주고 있다.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우리가 배운 지식과 경험,교육이 현실 앞에서, 운명 앞에서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회가 강조하는 가치들, 미덕들이 나에게 이롭지 못하거나, 나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면,그것의 가치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어떤 계획된 범죄도, 계획되지 않은 범죄도,우리 사회가 만든 여러가지 모순과 연결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