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 - 트라우마를 가진 당신을 위한 회복과 치유의 심리에세이
박성미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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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승의 울부짖음 같았다. 어릴 적 교회에 갈 때마다 지나가야 했던 양계장에서 칼 아래에 놓인 닭의 비명, 혹은 먹을 것 좀 얻어먹으려고 사람들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애먼 발길질에 얻어맞던 개의 비명. 내가 내던 소리도 그 짐승들과 다를 바 없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언어를 잃은 것 같았고 비명만 질러대는데, 동시에 그런 내가 생경하다고 느꼈다. 말하자면, 한순간에 짐승같이 울부짖는 나와 그럴 호기심으로 관찰하는 나로 분리되었다, (-4-)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무감정.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은 우울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리고 나는 과도한 긴장과 불안감을 느끼는 불안장애와 함께 해서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지는 무한궤도에 빠져든 것 같았다. 달라지고 싶다는 기대감과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회복할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이 동시에 있었다. (-19-)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돈이 없을 때는 굶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후에도 '넌 할 수 없어' 라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여럿 있었다. 내 속에서도 그런 말을 할 때가 많았는데, 나는 그 소리에 오랫동안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 내내 다른 아이들은 나보다 여러면에서 뛰어났다. 나는 실패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대견해지는 성과를 이룬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68-)

회복실에서 나오면서 링거 바늘을 뽑고 그 위에 대일밴드를 붙이는데,간호사가 약간 빗나가게 밴드를 붙이는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고 회복실을 나오는데, 오른팔에 차가운 것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피로 팔이 적셔지고 있었다. 시술을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랐다. 안 그래도 시술 전이라 긴장하고 겁먹었을텐데, 내가 일조한 것 같았다. (-127-)

불안발작이 뭔지도 몰랐던 가족들은 나를 '이상한 아이'로 개선이 필요한 아이로 보았다. 치료를 받기엔 당시의 가정 환경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좋지 않았다.나는 집을 떠나 20대 초중반을 견뎠고,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하는 '이상한 아이'가 되어갔다. (-162-)

고통이란 무엇일까?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 나에게 미친 영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나라고 생각했던 내 몸은 '나' 를 위협하고,고통은 "너무나 확실한 유령"으로 내 곁에 가만히 있다가 빈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나를 집어 삼킨다.본고는 그 유령의 실체를 마주하고자 시작된 연구이다. (-215-)

불안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문화심리연구자이며 문학치료학자인 박성미 작가는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 심리적 요인과 정신적인 인자를 연구하였고, 스스로 자가치유를 하고 있다. 불안이라는 추상적 가치는 나의 생각을 옥죄며, 그것이 나에게 아픔이자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상을 왜곡하고,긴장과 불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특히 어릴 적 공포와 긴자으위협에 대한 왜곡된 기억은 상처로 이어질 수 있고, 치유되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연결되고 있다.

불안은 나에게도 찾아오고 있었다. 작가 박성미님처럼 불안이 젖은 옷처럼 , 온몸이 흠뻑 젖었을 때와 같은 상황이 갑자기 나타난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무감각해지면, 내 삶의 긴장과 불안이 찾아오면,그 불안한 요인들을 제거하도록 선택과 결정을 강요받게 된다. 누군가의 전화를 받지 않게 되고, 전화가 오면 그 전화가 누구의 전화인지 반드시 확인한다.인간관계가 좁혀지게 된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 하나, 살다보면,나의 실수, 나의 선택의 결과가 나에게 불안이 될 수 있다. 저자처럼 어릴 적 경험했던 폭력이 아니더라도,우리는 일상속에서, 밖에서, 누구와 만나든지 간에 불안이 나타나고 있다. 불안을 경험한 이들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탈한 삶, 평온하 삶을 위한 선택을 강요받게 된다. 즉 욕구와 니즈, 무엇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나 감정이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욕심이 사라지게 되고, 모든 것이 귀찮아질 수 있다. 치유하기 위해서,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 상처를 절대 느끼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해온 모든 것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결국엔 스스로 불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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