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
이언 모리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평점 :
그러나 후진성의 이점이 가져오는 한 가지 명백한 결과는 각 핵심부 안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시간에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서양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초기 농경 시대에는) 측면구릉지대였다가 국가가 등장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해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으로 옮겨갔고 무역과 제국이 더 중요해지면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여 지중해 유역으로 옮겨갔다. 동양의 핵심부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황허 강 유역으로 이동한 다음 다시 서쪽의 웨이허 강 유역과 진 나라 땅으로 이동했다. (-58-)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그래도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가? 게으름과 탐욕, 두려움은 역사의 원동력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서 각자 선택을 하게 된다. 만약 유럽 최초의 농부들 가운데 4분의 3이나 그 이상이 채집 원주민에서 유래했다고 할 때 선사시대 유럽인 가운데 충분한 수가 경작의 집약화에 반대했다면 분명히 역사 궤도로부터 이탈하여 농경을 중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168-)
사회발전이 그럼 높은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지구상 가장 강력한 사회조차도 자신들의 구역만 지배할 수 있었지만, 19세기의 새로운 기술과 제도들은 과거의 지역적 지배를 세계적인 지배로 탈바꿈시켰다. 우리는 물론 왜 서양이 그러한 문턱에 도달한 최초의 지역인지도 설명해야만 한다. (-239-)
서양의 묘비명은 스쿠루지의 묘비명만큼 분명해 보인다.
서야의 지배
1773~2103
여기에 편히 잠들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로 닥칠 일의 환영일까? (-246-)
그러나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전파가 중국이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원인의 일부를 설명하긴 하지만 단연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동양의 모방이 아니라 서양의 붕괴이다. 기원전 1200년에 동양의 사회발전은 여전히 서양에 1000년 정도 뒤쳐져 있었지만 서양 핵심부의 내부 붕괴는 실질적으로 지난 6세기 사이의 성취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317-)
제2차 세계대전 말 자기 시대의 도덕적 위기를 해명하려고 애쓰던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거는 기원전 500년 무렵의 시대를 "축의 시대"라고 불렀는데 역사가 전환하는 축을 형성한 시기란 뜻이다. 야스퍼스는 축의 시대에 쓰인 저작들 - 동양의 유교와 도교 경전, 남아시아의 불교와 자이나교 경전, 서양의 그리스 철학 문헌과 구약성서 (그리고 구약성서의 후신인 신약성서와 코란도)-은 고전, 즉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규정해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 되었다. (-361-)
두 번째 힘, 경제를 위로 추진하는 힘은 기후변화라는 익숙한 힘이었다. 기원전 800년 이후 지구냉각화는 저가 국가를 대혼돈 속에 내던졌고 수 세기에 걸친 팽창을 촉발했다. 기원전 200년이 되자 계속되는 궤도 변화는 기후학자들이 로마 온난기라고 부르는 시대를 알렸다. (-410-)
도표 7.1에 따르면 541년은 역사상 가장장 유념해야 할 해가 될 것이다. 그 해에 동양의 사회발전지수는 서양을 앞지르면서 1만 4000년에 걸친 오랜 패턴을 마감하고 서양의 지배를 설명하는 어느 단순한 장기고착이론도 틀렸음으 단번에 입증했다. (-464-)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역병이 에티오피아에서 왔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역사가도 이에 동의한다. 페스트균은 541년보다 훨씬 전에 아프리카 대호수 부근에서 진화하여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검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 풍토벼이 되었다. 홍해의 무역상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에티오피아 쥐를 이집트로 옮긴 것이 틀림없는데, 보균 벼룩은 섭씨15도부터 20도 사이에만 활동하기 때문에 이집트의 열기는 530년대에 후반까지는 전염병학상의 장벽을 생성했던 것 같다. (-484-)
신유학파는 고전 연구를 사회개량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탈바굼시켰다. 고대 문화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문헌학적이고 예술적인 기예를 갖춘 사람은 현 세계를 구하기 위해 문헌학적이고 예술적인 기예를 갖춘 사람은 현세계를 구하기 위해 고대의 미덕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526-)
대서양 변경이 제기한 도전은 새로운 종류의 질문에 해답을 부르짖는 서양인을 낳았다. 그러한 질문에 대답한 뉴턴과 라이프니츠들은 이전의 어느 과학자도 상상할 수 없던 명성과 부를 누렸고, 로크나 볼테르와 같은 새로운 종류의 이론가들은 사회질서에서 이러한 진보의 함의를 그려보였다. 반면 중국의 새로운 스텝 변경 지대는 훨씬 온건한 도전을 낳았다. 강희제의 과학 연구기관에서 잘 대접받고 있는 학자들은 미적분법을 벌견하거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아낼 필요성을 못 느겼다. (-667-)
서양은 지리 때문에 지배한다.생물학은 왜 인류가 사회를 발전시키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사회학은 인류가 어떻게 사회를 발전시키는지 가르쳐준다. 그리고 지리는 왜 다른 지역이 아니라 서양이 지난 200년 동안 세게를 지배해왔는지 가르쳐준다. 생물학과 사회학은 모든 시공간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지 가르쳐준다. 생물학과 사회학은 모든 시공간의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법칙을 제공하고 지리는 그 차이를 설명한다. (-768-)
서양의 전쟁 수행 능력에서 1800년과 1900년간의 격차는 1900년과 20000년간의 격차만큼 크지는 않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하다. 이 시기에 서양은 범선과 기병대 돌격,전장식 활강 머스킷,초의 시대에서 포탄과 석유로 움직이는 장갑 전함 그리고 기관총의 시대로,탱크와 비행기가 출현하기 직전인 시대로 옮겨간다. 19세기는 서양의 전쟁 수행 능력을 한 자릿수 끌어올렸을 것이며, 따라서 나는 1800년 서양의 전쟁 수행은 동양보다 훨씬 효과적이었으며 그 시기 동양은 어쩌면 0.1점에 불과했을 것이다. (-869-)
서양은 왜 동양을 지배할 수 있었는가? 중국이 가지고 있는 농경민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점이 많았지만, 서야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후진성이 그들이 중국보다 앞설 수 있었던 이유로 손꼽는다. 저자는 21세기 초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생물학, 지리학, 사회학을 이용하여, 서양이 동양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사회 발전지표로 설명하고 있다.
541년 서양에는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발생하였고, 유럽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전 인류 인구가 3억 정도 되는데, 그 때 당시 역병으로 3000만 명이 사망하게 된다. 그로 인해 서양의 지배가 잠시 멈추었고, 위진남북조 시대였던 중국은 수나라 건국 후 서양을 앞서게 된다. 즉 중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혜택이 서양처럼 ,외부로 확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로 인해 아메리카 신대륙에 정화대 함대를 움직였지만,그곳에 가게 된 이유는 중국의 황제의 힘을 과시하고,조공을 받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서양은 신대륙에 정화대함대보다 늦게 발견하였지만, 깃발을 먼저 꽂았으며, 총과 균,쇠를을 이용하여,신대륙의 패권을 일찍 가져갈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영국이 중구 청나라를 상대로 아편전쟁이 발생할 대 까지 이어지게 된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둔하였던 중국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으며, 영국의 노골적인 지배욕을 중국 본토에 마약을 활용하여, 중국을 굴복시켜 버린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일찌기 중앙집권적 국가를 만들었던 중국이 가진 한계점이 고스란히 노출되었으며,그들이 어떻게 하여, 서양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 이후 그들이 세계의 패권을 가지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스스로 과학, 기술, 문화,사회 인프라 등등 동얀은 서야에 열세를 드러내고 말았다. 즉 서양은 동양을 포함한 중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나 강했다. 반면 중국은 내수시장이 우선이었으며, 박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할 이유가 없었다. 농경 중심이었던 중국이 드러낸 한계, 서양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노려왔던 계기는 여기에 있다. 문명 발전의 차이, 호시탐탐 중국 본토를 기웃거렸던 유목 오랑캐 민족을 방어하는데 최선을 다할 분이다. 하지만 21세기 중국 그리고 동양은 달라지고 있다. 중국이 서양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 맞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느 힘을 과시하고 있으며, 이 책에 나오는 사회발전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앞서나가고 있는 미국의 사회발전지수의 격차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