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새벽 예서의시 25
김미형 지음 / 예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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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차 맛이 나른한 몸을 깨우는 달

고사리가 땅에서 고물고물 솟아나는 달

목련 꽃잎 위에 겨울 추위가 잠시 앉았다 떠나는 달

참새 주둥이만 한 새순이 오리주둥이만큼 자라는 달

산과 들이 온통 연둣빛으로 오슬 갈아입는 달.

시금치꽃이 피고 줄기가 질겨지는 달.

황어가 알을 낳으러 강으로 올라오는 달

해뜨기 전 마늘종을 허리 휘도록 뽑는 달

하늘과 강물이 연하늘색으로 순순해지는 달.

메타세퀴이아 열매가 우박처럼 쏟아지고

나무는 밤마다 새순을 낳는 달. (-17-)

입과 주둥아리

봄날이 활짝 핀 한낮

까치 새끼가 땅바닥에서 어리벙벙하다.

길냥이가 오기 전

나뭇가지에 올리려고 다가선다.

후다닥 다가온

엄마아빠 까치의 다급한 소리

새끼에게 위험을 알린다.

거룩하다.

사람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살을 붙이고 바람을 넣어

말풍선을 만들었다.

거대한 마음벽이 생겼다. (-43-)

큰오빠

술기운이 거나하게 사람을 어르는 밤

땅을 흔들며 집으로 오는 발걸음

가슴에 꼭 안긴 누런 종이봉투는

구겨져서 울상이 되었다.

부산역 맞은편 화교 마을 화덕에서

바싹 구운 속이 텅 빈 빵

말수가 적어 무뚝뚝하기 그지없지만

얼굴에 불그레한 술꽃이 피면

달콤하고 부푼 말이 술술 새어 나왔다.

잠사태 나는 눈꺼풀 밀어 올리며

빵보다 먼저 배부르게 먹던

오라버니 따뜻한 마음

간간이 짖어대던 누렁이와

산마루에 걸터앉은 달님도

혀 꼬인 목소리 아련하게 들었다.

빵보다 달달하고 따뜻한 속마음

수십 녕이 흘러도 지지 않는 꽃(-84-)

인도 힌두의 성지 바라나시는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붓다께서 걸어온 그곳, 순례자가 느끼는 몸에 의한 고통, 오체투지를 상징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시집으로는 『내 안에 있는 너』『인연이 흐르는 강』『바라나시의 새벽』가 있으며, 『바라나시의 새벽』는 시인 김미형의 세번째 시집이다.

불교,겐지스강, 삶과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시를 통해 느껴볼 수 있었다. 육체 마저 태워서, 겐지스가에 흘려 보낸다. 인간의 순수한 마음은 자연의 경건함 앞에서 겸손해지고, 점점더 번잡한 세상과 멀어질 때가 있다.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인생의 가치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순례라는 것은 자신을 낮추면서,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따스한 붓다의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진흙 밑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인생에서,우리가 흔들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꼽씹어 보았으며, 인생의 덧없음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오고 있다. 시 한 편 한 편 읽으면서, 내 마음의 마음 언저리에 생체기처럼 남아 있는 불편함과 느림, 평온함과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 서로가 함께 하면서, 인생의 가치를 조금식 만들어 나가며, 너와 나에 대한 연결고리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순수한 가치, 붓다가 생각하는 인생의 덧없음 속에서, 사랑과 따스한 마음이 남는다.누군가를 향한 미움마저 버려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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