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여행법 - 불편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지나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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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토록 화가 났던 건 아마 그 사건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작부터 차곡차곡 쌓아왔던 거친 감정의 블록이 그 순간 와르르 무너졌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채 구겨 넣었던 기분이 뒤죽박죽 쏟아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겨울에는 짧아서 아쉽기만 한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곧 해가 질 듯했다. 어제는 골목을 걷다 만난 해안가에서 일몰을 봤는데, 오늘은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기분은 여전히 오르락내리락했다. 여행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가 ,지금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때 ,얼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33-)

세살 얼이와 베트남 호치민을 여행할 때였다. 길가에 놓인 낮은 테이블에 쪼그리고 앉아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유아차를 지붕 아래로 옮기고 들이치는 빗물을 훔치고 있는데, 말릴 새도 없이 얼이가 처마를 벗어났다. 그러더니 빗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얼이 말고도 베트남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안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54-)

여행은 수많은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안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 부모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때에 가르치지 못하면 여행을 계속할 수 없고 아이는 위험해진다.

얼이와 함께 다니면서 평소에도 계속 연습한다. 필요하다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도 곧바로 얼이를 데리고 내린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게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돌아오는 것보다 낫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더 중요한 순간에 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면 연약해진다. 무서워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훈육해야 한다. (-154-)

언제나 '지금' 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멀리 여행할 때는 으레 여기에 다시 올 것처럼,이번이 머지막인 것처럼, 지금이 아니면 영영 없을 것처럼 여행했다. 언제 여기 또 올 수 있을까.그게 순간에 충실한 방법이라 믿었다. 그런데 내일로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자꾸만 뭔가를 두고 왔다.다음에 또 오자. 다시 오면 거기에 가자. 다음 번엔 그거 해보자.,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을 남겨두었다. 다시 올 이유들을 만들어놓고 돌아왔다. 자꾸만 다음을 기약했다. (-212-)



마술을 전공하였던 작가 이지나의 여행에세이 『어린이의 여행법』을 읽으면, 솔직히 부러움과 질투를 느낀다. 태어나자 베이비시터에 태워서 해외 여행을 떠났으며, 아이에게 낯선 공간과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낯설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과 일치하고 있다. 색다름,낯설음은 돌발적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부모는 어느 정도 성장한 자녀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게 상식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작가 이지나는 과감했다. 여행을 통해 내 아이 얼이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책에서 주입된 지식과 관념은 차별과 선입견, 편견으로 이어진다. 돈과 물질, 지식이 함축하고 있는 속물과 탐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관용과 배려, 형재의 기쁨을 얻는다. 낯선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는 아이를 보면서, 상황에 지나치게 빠져 있는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여행에서 바가지를 써서 느낀 부정적인 여행 경험은 아이의 말한마디에 사르르 녹는다. 하루하루 느껴지는 살아있는 경험이 바가지보다 값지기 때문이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였던가, 나쁜 일들이 연속하여 발생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의 일부분,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어느 정도 허용할 수 있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책은 여러가지 메시지를 얻는다. 음악을 전공한 남편과 미술을 전공한 아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예술적 감각을 내면에 채우고 있는 아이에게 주는 여행이라는 선물, 책에서 배운 신뢰와 믿음, 약속이 아닌 ,직접 여행에서, 보고,듣고, 느끼고, 채워 가는 신뢰와 믿음, 약속은 오래갈 수 있으며, 사회적 약속과 ㄱ범이 왜 필요한지 살아있는 경험과 대화와 설득을 통해 건강한 자아로 이어질 수 있었다. 살아있는 교육을 여행을 통해서 얻는다.



이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서평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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