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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 그리움을 담은 이북 음식 50가지
위영금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평점 :
풍요로운 남쪽의 생활에서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마음.그것은 분단된 한반도의 아픔이고 고향을 떠나온자, 돌아갈 고향이 없는 자의 슬픔이다. 꽉 막힌 답답함을 풀어줄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문득 덩그라니 놓인 김치냉장고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김치통을 꺼내 열고 김치를 입에 넣었다. 음식,맛, 어머니, 고향....머릿에서 단어들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음식은 그렇게 기억의 중추신경을 자극하면서 현재의 나를 과거와 연결했다. (-11-)
둘째 오빠는 소아마비로 걷지 못해 늘 자리에 누워 있었다. 아버지가 약을 제조해 몇 년을 꾸준히 먹이자, 뒤틀리기는 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 이야기로는 약에 명태 애(간) 엑기스를 넣었다고 했다. 당시 명태 애는 만병 통치약이었다. 아버지는 눈이나 간이 안 좋은 사람이 명태 애를 많이 먹으면 해독작용으로 치료 효과가 좋다고 하셨다. (-58-)
밀가루로 만든 뜨더국을 쫄깃한 맛에 먹는다면 , 강냉이 가루로 만든 뜨더국은 구수한 맛에 먹는다. 하나를 선택하라면 강냉이 뜨더국을 고르겠다. 입에서 살살 녹는 맛도 좋지만 입자가 느껴져 씹는 재미가 있는 구수한 강냉이 맛을 넘지 못한다. (-127-)
투박한 엄마 손 같은 부채마 뿌리
얼기설기 잘도 뻗어가
굵고 긴 줄기 기름지게 영글어 가도
어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 줌의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수많은 사람들
산이 벌집 되도록 뿌리를 들어내고
이고 지고 기차타고 멀리 신의주까지
밀가루로 교환해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
부채마
그 연약한 허리 부여잡고
땅 밑에 뿌리로 산을 지키고 있음을
알길 없으니
자연과 인간이
궁핍으로 몸부림치고
쏟아지는 장맛비는
뿌리 없는 공간에 그대로 내리부어
그 큰 산이
휘청거리며 인가를 덮쳤다
1996년
홍수와 산사태가 빈번하더니
고향의 산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위영금 「부채마 뿌리 」 (-179-)
향수는 모두를 포용한다. 자신이 살았던 지역을 지금도 줄줄이 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말끔하게 잊은 사람도 있다.그렇더라도 몸이 기억하는 것이 있으니,그 시기먹고 살았던 음식이다. 고향 동창들끼리 만나는 사람도 있고, 라오스,미얀마, 태국, 캄보디아를 거치면서 우정으로 뭉친 사람들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만난다. 잊힌 사투리를 즐거이 듣고, 고향음식을 먹으며 지나간 날을 돌아본다. (-250-)
과거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아도,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 하여도, 마음이 텅 비어 있을 때가 있다.외로움과 쓸쓸함, 생존, 내 편이 없다는 답답함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현존하는 삶 에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오는 경험들, 의식주, 물질, 과거들에 대해서, 어떤 이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다. 전세계 유일하게 남한이 분단되어 있는 곳, 서로 떨어져 살아간 지, 70년이 넘었건만 ,살아온 민족의 정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 위영금.2968년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구 자동에서 태어났다. 1998년 탈북을 하였고, 2006년 대한민국에 정착하였고,어느 덧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왔다. 고향에 갈수 없는 삶, 강냉이죽 하나 먹을 수 없는 현재의 삶은 고달픈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에 나왔지만, 그것이 다시 북한에 들어가고 싶은 이중적인 생각을 할수 밖에 없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 기아로 죽어가던 이들을 보면서, 탈북하기로 결심하였다. 살아가면서, 어디에 살아가든 ,현재의 장소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하였다. 죽기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었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탈북했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하지만 , 내마음 속의 울컥거리게 되는 정서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북한 고향에 머물러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 그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국에 대한 향수, 탈북민과 정서를 공유하였고, 그것은 우리를 슬픔과 그리움으로 채워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