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의 첫 에세이
이대호 지음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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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 사이에서 "롯데 선수라면 부산에서 밥값이나 택시비를 낼 일은 없다"라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부산 시내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롯데가 가을야구에 진출하더라도 엉망진창이 될 학생들의 입시 성적 때문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말할 정도다. 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치열한 순위 싸움이 벌어지면 입시생이라고 해도 한창 막바지 정리에 열을 올려야 할 9월가 10월까지 틈틈이 스마트폰 야구 중계차을 곁눈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2-)

할머니는 부산 수영구에 있는 팔도시장 노점에서 반찬을 팔았다. 시장 골목 중간쯤에 있는 문구점 건너편이 할머니가 좌판을 벌이던 자리였다. 할머니의 좌판에는 여러 반찬이 올라왔지만,가장 인기있는 것은 된장에 재운 콩잎이었다. (-61-)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 대표팀이 내걸었던 목표는 최소 동메달 이상의 성적이었다. 역대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이 거둔 최고 성적이 바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따낸 동메달이었다. 오림픽은 최고 수준의 대회로, 아마추어 야구 세계 최강으로 통하는 쿠바가 출전한다. 미국은 아직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지는 않았지만 스타 플레이어가 될 잠재력이 충분한 AAA 최고 유망주로 팀을 구성해서 나선다. 일본도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을 파견한다. 동메달이라고 해도 결코 낮은 목표가 아니었다. 금메달을 따야만 병역 특례 혜택을 받는 아시안게임과 달리 동메달 이상만 획득하면 병역 특례 혜택을 받는 것만 봐도 올림픽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132-)

팀 내에서 입지가 확립된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예컨대 내가 2년간 뛰었던 소프트뱅크에서는 내가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혹시 사소한 부상이 발견되어도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치료를 받거나 ,휴식할 수 있었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환경도 구단에서 마련해줄 터였다. (-192-)

2017년 복귀 후 첫 시즌을 보낸 뒤 황재균과 강민호가 떠났고, 2021 시즌을 마친 뒤에는 ,롯데가 배출한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타격 기술을 가진 타자 손아섭마저 NC 다이노스아 대형 FA계약을 맺고 떠났다. 팀의 기둥 역할을 해오던 동료 선수들이 하나씩 떠날 때마다,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만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장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231-)

1982년 시작한 대한민국 프로야구가 어느 덧 40년이 넘었다.항상 메이저리그와 일본 NPB 에 비견하여, 프로야구 한국의 수준은 매우 열악했다. 이종범,선동렬,이강철, 양준혁으로 대표하였던 야구는 어느덧 82년생, 이대호, 김태균, 추신수,오승환이 주도하였다. 롯데를 대표하는 이대호 마저 2022년 은퇴하였고, 롯데 최동원과 함께 영구결번에 지정되었다. 이대호는 골든글러브 7회 수상, 한미일 통산 486 홈런, 2,895 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은 그가 기록한 11개의 도루 일지와 6개의 3루타 일지를 우선 기억한다. 발이 빠른 이종범 선수,이정후 선수가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 ( 영어: inside-the-park home run ) 를 칠때, 이대호는 3루타조차 힘들다.그만큼 이대호의 발이 느리다는 의미였고,그가 타자로서 9관왕에 오르기까지 노력형 야구선수였다는 것, 그가 가진 단점을 극복하였으며, 삼성 3루수 프랜차이저 김한수가 있었다면, 롯데의 3루수 프랜차이저 이대호가 있다.

그가 2006년 타자 트리플 크라운이 되었지만, 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MVP가 되지 못했다.그 해의 MVP는 한화의 류현진이 차지한다. 이대호는 2010년 타자 7관왕이 되면서,정규시즌 MVP가 될 수 있었다. 2001년 롯데에 들어가서 프로야구 선수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2012~2015년 사이에 NPB 일본야구 선수로 임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 ( 王 貞治 , 1940년 5월 20일 ~ ) 가 이대호에게 일봉에 꼭 필요한 선수이니, 달콤한 제안을 했지만, 이대호는 메이저리그에 신인으로 문을 두드렸으며, 2016년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104경기, 292타수, 33득점, 74안타,14홈런, 49타점을 기록하였으며, 타율 0.253, 출루율 0.312, 장타율 0.428, OPS 0.740을 기록하고, 2017~2022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국내 선수로 활약하고,은퇴하였다.그의 활약은 이승엽에 비견한다.단 차이라면, 이대호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우승을 경험해 보지 못한 무관의 제왕이었는 점이다.류현진 선수도, 한화이글스에서 맹활약을 했지만, 우승하지 못했고, 소년가장으로 남아야 했다. 류현진이 한화에서, 미국 LA다저스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2012년 9승 9패, 210탈삼진을 기록하고 난 뒤, 완봉패를 여러차례 보았던 한국 야구팬들, 한화팬을 포함한 국내 야구팬들의 분노 때문이다. 만년 꼴지였던 한화이글스가 매해 꼴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 프로야구의 투수 넘버 원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최정상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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