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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왔습니다 - 무작정 떠난 세계 여행 1330일
임윤정 지음 / 비즈토크북(Biz Talk Book) / 2023년 3월
평점 :






없었다. 비상금이 든 복대와 핸드폰, 사진이 저장된 외장 하드를 넣어둔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카드 지갑이 나와 있는 걸 보니 가방을 뒤진 게 분명했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머릿속 뇌 기능이 정지한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에서 '왜?'라는 말만 메아리처럼 되풀이되고 있었다. 왜 내가 버스에서 내렸을까?근데 왜 하필 나지? 외장하드는 왜 들고 갔을까? 왜? 왜? 왜? 차라리 돈만 가져갔다면 마닐라 때처럼 손바닥 털듯 툭툭 털어 버렸을 텐데. 사진이 없어진 것은 어떻게 해도 털어지지 않았다. 사랑스러운 엘리, 세상에서 가장 예쁜 커플, 마린과 욘, 손수하고 아름다웠던 말랑 아이들, 쿠칭의 친할머니 같았던 안티...함께한 추억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허무하고 공허했다. (-37-)
런던 거리는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 자리 잡은 빅토리아푸의 건물을 보면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건물의 벽돌 뒤에는 정말 마법 세계가 있을 것 같았고 ,이층 버스를 타고 시내의 좁은 도로를 지날 때면 버스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 같은느낌이 들었다. 바쁜 도시인의 전형처럼 서류 가방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전신에 피어싱을 한 남자, 파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가죽 재킷을 입고 있는 할머니, 추운 날씨에도 탱크톱을 입은 여자 등등,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114-)
내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돈이 없으니 저녁도 못 먹을 거 같아서 음식을 해놓고 기다렸다고. 어리둥절하면서 감동스럽고,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겁지겁 밥만 먹었다. (-147-)
우리가 묵었던 곳은 남녀혼성 도미토리였다. 전부 2층 침대였고, 빈 곳은 위층밖에 없었다.연세가 있으신 두 분이 침대에 올라가는 걸 힘겨워해서 나머지 두 사람이 도와주고 있었다. 모두 자고 있으니까 불도 켜지 못하고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는 상황이었다. (-204-)
수도원 전체가 그랬다. 겉면은 벽돌처럼 단단하고 차가워 보였지만, 안은 한없이 부드럽고 안온했다. 세월에 의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간 벽화들은 수도원에 성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벽에는 여기저기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이 걸려 있었고, 크고 작은 예배실에는 언제라도 기도할 수 있도록 촛대와 성경이 놓여 있었다.마르무사 수도원을 향한 수도사1분들의 깊은 애정과 정성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259-)
그리스 정교회는 성 엘리야 주교좌성당보가 한층 더 단출하고 딱딱한 분위기였다. 중세 유럽 교회나 성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스테인글라스나 프레스코화는 없었지만, 묵직하고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
주데이데 전체가 그런 분위기였다. 아랍 문화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지만, 중세 유럽의 분위기 도한 간직하고 있는 곳이 주데이데였다. 좁은 골목, 높은 담장, 사이사이 놓인 아치향 게이트 등이 주데이데 거리의 주요 특징이었다. 일찍이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의 수크에서 보아왔던 모습들이었다. 당장이라도 골목길 끝에서 투구를 쓰고 창과 방패를 든 채로 말을 타고 있는 중세의 기사가 나타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가 났다. (-273-)
캐나다, 중국, 라오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필리핀, 인도, 네팔, 파키스탄, 이란, 튀르키예,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수단, 에디오피아, 우간다. 르완다,부룬디,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집바브웨,모잠비크, 남아프리칻공화국까지, 총 31개국, 138개 도시로, 1330일동안 세계여행을 다녀온 작가 임윤정의 세계여행 에세이집 『잠시 다녀왔습니다, 무작정 떠난 세계여행 1330일 』이다. 한달도 아닌, 4년 가까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버렸고, 잃어버렸고,놓쳤으며, 감동을 얻었고, 비우고, 채워 나갔다.
익숙한 곳에서,낯선 곳으로 감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추억이 담긴 사진을 통째로 잃어버렸고,허무함을 느낀다. 소중히 내 소지품을 챙겨야 한다고 숙지하였지만. 실제로 내가 경험하지 않고는 모르는 부분이다. 실제로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나의 실수로 ,부주의로 생긴 것이었다.
마닐라 페낭 게스트하우스 에서 경험했던 여러가지 경험들이 저자의 세계여행을 특별하게 해주었다. 때로는 히치하이팅을 했고, 때에 따라서, 누군가의 호의를 받았다. 좁은 골목 높은 담장,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풍경을 세계여행을 통해서,경험하였고,추억하였다. 인도 땅에서, 겐지스강에서,화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길을 다니다가, 쥐가 발 밑에 다니고, 소똥을 피하면서 다녀야 했다.인도에서 하늘을 보고 다닌다는 것은 사치였다. 인도 여행이 결코 낭만적일 수 없었던 이유다.
시리아와 리비아, 파키스탄과 이스라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다. 그 국경이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서, 엄격하고, 조심스럽고, 때에 따라서,위함하였고, 감시도 심했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한국의 고마움을 느꼈고,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얻었으며,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비워낸다. 피부가 다르고,언어가 다르더라도, 사람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낯선 곳에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동시에 보았고, 낯섦에서, 친숙함늘 느꼈다. 세계여행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사람을 마주하고, 내가 가지지 않는 것을 채워주는 따스한 정,그 정이 여행의 묘미였으며,선진국보다,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여행으로 떠난 저자의 특별한 세계여행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 인문학강의와 중남미, 아프리카, 코마서스 등 특수 지역 해외 인솔자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