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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논산글방 '와초재臥草齋 '에선 혼자 있을 때가 많다.혼자 있으면 늘 밥이 문제다.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어서 설령 냉장고에 반찬이 넉넉해도 꺼내 먹을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다. 이른바 '절필'하고 용인 변방의 외딴집에서 혼자 3년여 살 때도 몸무게가 많이 줄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모두 밥 때문이다. 혼자 먹을 때는 단지 생존을 위한 식사인지라 김치 한 가지만 내놓고 물 만 밥으로 겨우 공복을 때우기 일쑤다. (-14-)
나는 《당신》 이라는 책에 남자의 아내 이름을 썼다.
그 책의 날개엔 본문 중 한 구절로서 이렇게 씌어 있었다."우리는 얼마나 많이 ,이 봄, 이 여름, 이 가을이 아니면 못 볼 꽃을 그냥 지나쳐 왔을까."남자의 회한이 그 문장에 닿아있다고 나는 느꼈다. 가슴이 찡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67-)
그런데 이 불안감은 무엇일까.
창조적인 에너지는 당연히 '내적분열'에서 나온다. 자가의 상상력은 더욱 그렇다. 작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가 가장 위태롭다고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이웃의 삶이 벼랑 길에 놓여 있다고 늘 생각한다. 객관과 주관, 집단과 개인,광장과 밀실을 수시로 오가는 것이 작가의 일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가만히 있어도 상승과 추락,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왕래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내가 느낀 불안은 바로 그것이었던 모양이다.부족함이 없는 것.안온한 일상이 불러올지 모르는 부식 腐蝕 에의 공포, 이를테면 나는 앞으로 걸어갈 길이 보다 안전한 인도일지 모른다는 예감에 본능적으로 공감을 느꼈던 셈이었다. (-155-)
삶은 말할 것도 없이 실제와 초월 사이에 있다. 연전에 쓴 소설 《소금》에서 자본주의를 두고 '거대한 빨대들의 네트워크'라고 말한 바 있거니와,세상이 아무리 우리에게 '빨대'를 하나씩 들려 저기 불안한 소비의 정글로 몰아낸다고 하더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초월적인 먼 꿈을 모조리 지울 수는 없다.이른바 본성이라고 부르는 영혼의 원자핵에 그것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것이 어찌 목숨 뿐이겠는가. 사랑도 그렇고 행복도 그렇고 신의 옷깃을 잡고 싶은 갈망고 그러하다. (-231-)
옳거니. 만약 우리가 어떻하든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면 '위대한 길'을 가면 된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수많은 보통사람인 우리에게 너무도 힘들고 가혹한 길이다. 위대한 길을 가는 건 지속적 행복을 얻는 것보다 더 어렵다. 놀라운 헌신에의 결단. 그리고 남다른 신념과 실천력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301-)
공자의 논어에는 일흔을 '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라고 했다. 그렇다면, 1946년생 , 등단 50주년을 맞이한 , 「소금」,「주름」,「당신」 ,「은교」 를 쓴 박범신 작가에게 일흔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이며, 그의 다음 세대는 어떻게 일흔을 마주해야 할 것인가, 깊은 상념에, 둘러 쌓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나이는 먹어간다고 하였던가. 그가 생각한 나이는 허투루 먹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일흔은 한숨 깊이 들이쉬었다가, 겨우내 내쉬는 나이 일흔이였다. 나를 위로하는 나이,일흔이었다. 자신이 삶에 대해 안온한 삶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마음 속 불안감이 현재하였다.그가 머물러 있는 그의 서재 공간, 와초재臥草齋에서의 홀로서기는 삶의 균형잡기이며, 생존하기 위해서, 비움을 위해,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위해서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세상과 단절한 것은 아니었다. 고향 논산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면서,누구나 와서 인사하고 갈 수 있는 와초재臥草齋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삶에 대해 긍정하였으며, 소설의 힘을 작가 박범신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인 묵직함과 무거움,책임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쓴 글에 대한 무섬증과 책임, 누군가의 인생관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죽을 때까지 절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국어 교사였던 그 시절의 삶, 사회에 저항하고, 교사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작가로서 걸어온 50년간의 삶, 내가 정해놓은 가치관,정체성을 쉽게 포기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해당되고, 그것은 내 삶의 긍정과 확언이 될 수 있음을, 작가 박범신의 에세이 『순례 』에 이어서, 두번째 에세이 『두근거리는 고요』 에서 느낄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