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꿈꾸던 그날인가 - 98편의 짧은 소설 같은 이향아 에세이
이향아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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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까만 찻잔을 좋아해요."

내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가 말했다.

주전자도 앙증맞았다. 그녀는 작은 주전자에 따듯한 물을 따르더니 대나무 숟가락으로 찻잎을 떠서 찻잔마다 담았다. (-17-)

그러나 나는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 라는 말에 동조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침묵해서는 안 될 자리에서 침묵하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일인지. 생각이 없을 때도 침묵하고 적절한 말을 몰라서 침묵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좋은지 모를 때도 침묵한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 중에는 다수의 언중과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있다. (-116-)

시간은 시간대로 빠르게 지나간다. 다시 한 해 시작되었지만, 현재라고 믿고 있는 순간순간이 전광석화처럼 과거로 묻히고 멀미할 틈도 없이 우리는 미래 속으로 실리어 간다. 벼랑의 깊이를 가늠할 겨를도 없고 달려온 길을 돌아다 볼 수도 없이 다만 견디고 있다. (-123-)

나는 그때 남자 중학교로 발령이 난 것이 싫었다. 사립학교에서는 여자고등학교 교사였는데 서울시 공립학교로 전근하하면서 남자 중하교로 발령이 났다. 그러나 한두 학기 지나면서 남하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훨씬 단순하고 순진하고 귀엽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 한 날도 유리창이 깨지지 않고 넘어가는 알 없을 만큼 해도, 남학생들은 돌아서면 금세 풀어져 마음에 옹이가 남지 않았다. (-145-)

책의 앞부분에 이향아 작가의 프로필에, 1963~1966년 현대문학 3회 추천을 받아 문단에 올랐으며,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고 소개되고 있었다.. 현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고인이 되신 이어령 교수와 동시대에 살아왔으며, 여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 꼽씹어 볼 수 있었으며, 이 책을 통해서,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1960년대, 사립하교 여고 선생님에서, 공립 남중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으며, 가난했던 그 시절을 지나, 천생 선생님으로 살아온 시간들을 보면,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이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처음 여자고등하교에서 일했다. 이후 남자중학교에 부임하고, 그 안에서,여학교와 다른 남학교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여학생과 남학생의 차이를 보면,남학생은 옹이가 남지 않은, 뒤끝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남자중학교에 부임하고 싶은 건 아니었기에, 선생님으로서,귿종안 선입견과 편견으로 살아온 과거를 꼽씹게 되었으며,나의 삶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자신이 삶에 대해서,인생에 대해,내가 쓴 언어에 대해 책임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침묵에 대해서, 그 것이 때와 맞지 않을 때, 비겁함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 삶이 결코 나를 이해하고, 공감으로 나타나며, 삶의 흔적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하는지 하나 하나 돌아볼 수 있다. 교육자와 선생님은 엄연히 다르다. 결국 우리는 앞으로 주어진 시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고,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삶, 행복한 삶, 그리고 나이에 걸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내 삶에 대한 성찰이며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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