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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트하는 여자 ㅣ 예서의시 24
정귀매 지음 / 예서 / 2023년 3월
평점 :
광릉요강꽃
이름만으로도 위태로운 꽃이 있다.
사는 곳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숨겨야 하는
1급 보호 식물
너무 아름다운 것이 죄가 되나
꽃 피는 일이 단두대에 서는 일 같아
발견되면 누군가 뿌리까지 파헤쳐
일가가 멸종되는 꽃
마음을 마음에 숨겨두고
존재를 존재 속에 가두어도
어느 새 꽃대는 자랐다.
주름치마 펼쳐 들고 연지곤지
붉은 입술 다물고
두려움 없이 피어난 꽃
당신이라는 숙명을 향해 고개를 들고 보니
여기가 마지막임을 알겠네.
그대만 향해 뻗어가는 굴애성
설령 꽃 피우는 일이 목숨을 놓는 일이라 해도
멈출수 없는 일이다.
꽃이기에 (-24-)
신록의 집
사람의 마음을 훔치려 한 적 있습니다
마음을 훔치는 일이란
온몸의 세포를 모두 열어두어야 가능해서
꽃 피고 지는 흔한 봄 일에도
살갗이 곤두서 아팠습니다.
산벚꽃 수줍게 피어나던 눈망을과
산자락으로 일상사에 번지는 새싹
저 뭉글하고 달콤한 체온이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일으키며 통과해 가던 봄날
뿌리의 끝과 허공의 끝을 물의 맥으로 이으며
어쩌자고 또 산은 뭉텅뭉텅 속살을 핍니다.
그 절정의 가지 끝
어미 새가 새끼를 부화하는 동안만 깃들어도 좋을
허공의 집 한 채
살 냄새 나는 둥지 하나 가지고 살았던 적 있습니다. (-68-)
열 두 폭
문신 같은 날들을 빼곡히 수놓아 놓고도
풀어진 한 올을 찾디 못해 울타리를 완성하지 못하는 여자. (-91-)
살아가면서, 나에겐 기다림이 필요했다. 내 주변을 살펴보는 관찰도 필요하다. 인생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었다. 시 한 편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관찰하고, 얼마나 많이 기다렸던가. 하나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 자연에 자신을 내 맡기고서, 그 자연 속에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낸다. 시인은 그런 줄 알았다. 시인은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시인 정귀매, 퀼트하는 여자라 말한다. 홈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 퀼트가 무엇인지 알지 않을까. 퀼트 이불을 짓기 위해서, 준비하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것들, 신중한 것들을 하나 둘 셋,내것으로 채워 나간다. 정성과 소중함으로 채워진다. 퀼트도,,인생도 그러하다.
시 『광릉요강꽃』을 읽으면서, 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을 엿본다. 처음 광릉요강꽃이 사람들에게 미움 받아서, 꽃이 보이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광릉요강꽃을 아는 이들은 이 시를 이해하고, 깊이 공감하게 된다. 벌을 유혹하고, 벌이 들어오면, 빠져 나오지 못하는 꽃이다. 꽃에 덫을 놓는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자연 희귀한 꽃,그 꽃이, 인간에게 보이는 그 순간 꽃이 뽑혀지고, 집으로 가져가랴고 한다. 광릉 요강꽃이 지니는 매력과 아름다움이 귀함이 , 도리어 꽃이 뿌리채 뽑혀지는 이유가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인은 『신록의 집』을 통해서,인간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는 마음와 마음을 엮으려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 사람에게서 뭉클하고 , 사람에게서 달콤함을 느낀다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다 바쳐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 시도하여, 금새 포기하려드는 나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시는 인간의 마음을 탐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상화하고자 하였다. 살아서, 주어진 삶속에서,나는 어떤 시를 내 마음 속에 심어 놓았는지, 돌아보게 했다. 결국 우리는 살아가고, 존재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였다.그리고 결국 우리는 마지막 삶 이후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과의 만남은 결국, 퀼트하는 마음에 내재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