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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김종해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평점 :
절망도 약이 된다.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된다.
그대여,오늘의 캄캄한 시간이
괴롭다고 자책하지 마라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기만 했던 시간이
사람 살아가는 날의 일생에서 보면
바람 스치는 한순간일 뿐이다.
뜨거운 불가마를 거쳐나온 도자기가
온전한 제 모습을 갖추듯
그대에겐 새로운 내일이 있다.
수천억 년 묵묵한 바위로 살기보다
짧은 시공 時空 안에서
짜릿하게
슬프고 기쁜 마음 누리고 가는
인생 앞에
때로는 절망도
우리 살아가는 데 약이 된다. (-15-)
얼람을 껐다
평창동 영인문학관에 가서
이어령 선생을 추모하고 돌아온 날 밤
새벽 3시까지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암전 속에서 혼자 헤매었다.
밤새 뒤적이던 그때
십수년 전 낮 12시 신문화관 오찬장에서
밥 한 끼 각별히 사 주시던
뜬금없는 기억
아! 하고 잊혔던 그날의 이어령 선생이 떠올랐다.
은쟁반 위에서 쉴 새 없이 구르던
선생의 달변
사람 살아가는 일상의 캄캄한 한순간이
갑자기 수면 위로 환하게 떠 오르자
오늘 밤, 잠은 다 잤구나
나는 손을 뻗어서
침상 위의 새벽 5시의 알람을 껐다.
이제까지 아침 해 돋기까지
두 다리 뻗고
나는 늦잠을 자리라
그리하여 이어령 선생을 잊게 되리라
새벽의 알람은 꺼진 채
다시 내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리라. (-43-)
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16층 05호실에는 어쩌다가 승강기 앞에서 잠깐 모습을 보이는
90대 노부부가 정물처럼 산다.
거친 한세상 살아오면서 몸을 비운 두 사람을 보면
안거를 모두 끝낸 불자의 편안함이 보인다.
몸이 가벼워졌을 때를 기다려 가볍게 낙하하는 가랑잎처럼
자연 속으로 고요히 돌아가는 길을 깨친 그들의 뒷모습
따스하고 부드럽다.
가을은 길 밖에서도 길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경계를 언제나 허문다. (-98-)
화장 - 코로나 바이러스
장례식은 끝났다.
고글을 쓰고 두터운 장갑
하얀 방호복을 입은 사람 서넛
화장로 연소실의 불길을 지켜봄다.
타오르는 불길은 바알갛다.
또 한 사람이 이승을 떠난다.
슬픔은 서로에게 감염되지 않는다.
하얀 방호복 속에
남겨진 자의 슬픔도 갇혀 있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추억은
오늘 밤 별이 되어 떠 있을 것이다. (-115-)
시인 김종해의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는 죽음이 켜켜히 묻어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삶과 죽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 살아있었던 그 누군가가,내일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불현듯 준비되지 않는 죽음은 필연적으로 불행과 엮이고, 자신을 파멸시킬 여지를 넘겨 놓는다. 죽음이란 나의 이야기 이기고 하고, 타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일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사망자가 나타난다 하더라도,우리가 크게 상처를 입지 않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잇는 건,그 죽음의 대부분이 타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2022년 2월 26일 우리 곁을 홀여니 떠난 이여령 교수의 삶과 죽음을 응시하는 여든 시인의 마음과 내면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서로 사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에서 불안을 내포하고, 우울을 내포하고 있었다. 죽음과 죽음의 임박, 죽은 이들에 대한 회상이란 결국 종착역은 나의 죽음이 될 수 있다. 인간이 죽음 앞에서 무기력하고, 불안하고,우울해지는 이유도 그러하다. 망설여지며, 어떤 일을 계획할 때,완벽을 기하려고 하는 이유도 죽음앞에서 후회의 씨앗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선택하기 주저하는 이유도 죽음이 있어서다. 1941년 생 시인 김종해는 여든이 넘은 나이다. 100세 시대라 하더라도,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 말한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나이였다. 삶에 대한 책임보다는 비움에 익숙해질 나이, 그 아네에 대한 무게감이 시 곳곳에 채워지고 있었다. 무겁지만, 비우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 시적 상상이, 결국 바람처럼 살다가,바람처런 떠나고 싶은 삶의 욕구가 드러나기 마련이다.자신보다 더 살아온 앞선 세대를 반추하고,어르신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겸손을 배운다. 결국 짧은 인생,짧은 시간에 대한 회한만 남기 마련이다. 미워하지 말고,사랑해야 하는 이유만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