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탐구 생활 - 완벽주의와 자기의심에 대하여
사월날씨 지음, 이지선 북디자이너 / 왼쪽주머니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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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이 나를 데려가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자괴와 평가와 고립의 땅이다.

들킬까 봐 늘상 불안한 곳, 그곳에는 잘하는 걸로 자신을 증명해내려 하는 사람이 있다. 못난 사람이 되는 걸 견디지 못하여 우우러감과 열등감을 둘 다 갖는 사람이 산다.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수치심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나를 납득시켜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인 사람이 가면을 쓰고 수동적으로 굴며 거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17-)

착함은 여성이었다. 여성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려면 착해야 한다.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착해지려고 애썼다. 공부를 잘해도 착하면 된다. 아니, 공부를 잘할 수록 착해야만 한다. 여성으로서의 사회화가 진행되면서 내 세계의 규칙이 바뀌고 있었다. 또래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그전까지 필요했던 덕목이 친화력,주도력 같은 것이었다면 어느덧 착함, 튀지 않은,나대지 않음, 물러서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입기 시작한 치마 교복은 사회화의 상징이 되었다. 치마 교복을 입은 나는 여학생으로서 녹아들어야 했다. 착하고 배려하고 겸손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존재. 나는 짜인 각본을 충실히 따르느 타입이었다. (-70-)

구구절정이란 나를 타인에게 설득하거나 설명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려 있을 때 스스로 느끼는 마음이고 그렇게 해도 나를 이해시키지 못할 거라는 깊고 막연한 두려움이 미리 입 아픈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즉, '구구절절'은 이해받고자 하는 몸부림이고 '말하기 귀찮아'는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다. 수치심이 만들어내는 우울의 감각이다. (-111-)

평가하는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순간, 내 몸이 드러나거나 드러나지 않는 것,누군가를 유혹하거나 유혹하지 못하는 것, 몸으로 무언가를 얻거나 얻지 못하는 것, 누군가가 내 몸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 내 몸이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 그 모든 것으로부터 수치심이 생겨난다. 드러나도 부끄럽고 드러나지 찮아도 부끄럽다. 욕마의 대상이 되어도 부끄럽고 되지 못해도 부끄럽다,. 세상이 쳐놓은 덫에 걸려 꼼짝없이 서서 더러운 시선이 내 몸을 멋대로 훑고 지나가는 동안 온몸으로 수치심을 받아낸다. (-188-)

이 수치심은 혼자서만 겪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만 만들어낸 것도 아니겠다는 깨달음, 수치심이 어떻게 사회화되어 왔는지, 사회화된 수치심이 개인의 특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하여 이 수치심이 정말 내 것일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 워크숍을 열 때의 기대와 조금은 같고 조금은 다르지만 분명히 얻었다. 나는 어딘가 잘못되고 어긋나서 나라는 인간의 개성은 숨겨야만 한다는 ,목을 죄고 있던 무언가의 힘이 조금 느슨해지는 안심을 말이다. (-218-)

행복한 삶을 살다가도 , 갑자기 수치심을 느끼는 순간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아담과 이브가 나체 상태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선악과를 먹고 난 뒤, 나뭇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게 된 것도 아담과 이브의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수치심은 부끄러움과 우울감, 감정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아픔을 줄 수 있고,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리석은 나 자신을 인지하게 된다. 실수,실패, 부끄러움, 이것들은 수치심의 근원, 원형에 해당되고 있었으며, 아이였던 소년이 어른이되면서, 점차 수치심을 느끼며, 삶에 있어서,가치관, 정체성과 엮이고 있었다.여기서 사회화는 남성다움,여성다움에서 시작되며, 여성의 경우, 초경,생리르 시작하면서, 수치심은 출발한다.수치심 유발은 불결하다,불경스럽다는 말과 일치할 때도 있기 대문이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옷을 입지 않츤 채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었던 건,아이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이들은 수치심을 학습하게 된다. 어떤 자리에, 어떤 장소나 시간에 격식을 차리는 이유는 예의,매너이기도 하지만, 나의 부끄러움, 수치심을 감추기 위함이다. 특히 지위가 높을 수록 수치심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내면속 부끄러움,수치심을 건드리면, 발끈하거나,분노를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수치심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대한민국 사회가 자살이 만연한 이유도 수치심과 무관하지 읺았다. 요성은 365일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외모에 신경쓴다.

자기애가 깊을 수롟 수치심을 잘 느낀다. 누군가를 언어적 폭력을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그 사람의 수치심을 적극 이용한다. 그건 직위가 될 수 있고,호칭이 될 수 있다.무시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갈하거나, 객관적인 평가와 비교로,수치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여성의 경우, 남성의 어설픈 시선으로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수치심은 남녀가 다르고,우리 사회가 만든 사회화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배려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의 수치심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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