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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양손 - 윤중식 화가의 6·25전쟁 피란길 스케치
윤중식 그림, 윤대경 글 / 상수리 / 2023년 3월
평점 :







"아버지 손 꼭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 손 놓치면 안 돼!
아버지 손 놓으면, 그 순간 너는 고아가 되는 거야.
아버지도 아머니도 다시는 못 만나.
꼭 명심해야 한다.
알았지? " (-14-)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는 가난했어요.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5년 밖에 되지 않아,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어요. 식량도 부족해서 매년 봄이면 보릿고개를 겪었지요. 곡식이 부족하니, 산나물을 캐어 나물죽을 쑤어 먹기도 했어요. 영양실조로 얼굴이 붓고 심지어 죽는 사람들도 생겨났어요. 따뜻한 옷도 없었지요. 이전에는 무명천에 솜을 대어 누빈 옷으로 겨울을 났는데, 전쟁통에는 그런 옷들도 귀했어요.누비저고리나 누비바지가 없는 사람들은 얇은 면바지나 저고리를 겹겹이 입고 피란길에 올랐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추웠겠어요? (-26-)
아버지가 정든 집과 고향을 버리고 피란길에 오른 것은 오직 가족 때문이었습니다.가장 소중한 가족을 살리기 위해 화가의 길도 교사로서의 사명감도 내던졌습니다.아버지는 해방 직후인 1945년에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 만큼 재능이 넘치는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진 것이지요.
피란길은 아버지에게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여기저기 널린 주검들 사이를 지나며 아버지는 많이 지치고 외로우셨을 겁니다. (-44-)
1945년~1950년 사이에 찍힌 사진들은 대부분,외신 가자들, 종군기자들에 의해 찍혀진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그 때 당시를 회상하는 사진들을 볼 때면, 우리의 혹독한 근현대사를 엿볼 수 있고,그것이 우리 삶을 흔들어 놓았다.격정적이고,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죽음의 사선을 넘어야 했던 1950년6 월 25일 이후,우리네 삶은 가난하였고, 죽음을 건 피난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내 가까운 친척들도 6.25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외사촌 큰형은 그 때당시 아버지를 잃었고, 70년이 넘는 지금까지 유복자로 살아왔다.여기서 아버지 없이 살아왔다는 것은 외로움을 넘어서서 서글픈 일이다.아버지가 없는 것도 서글플찐데, 어려서부터 눈칫밥을 먹으며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생존 의지밖에 없었다. 각박한 세상은 그런 이들에게 날카로운 언어와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다. 전쟁 난리 통에 가족을 잃은 이들은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다.
이 책은 아버지 윤중식(1913~) 화가가 남겨놓은 그림에 대해서, 아들 윤대경(1947~) 가 쓴 책이었다. 그림에 있어서, 인정받았던 아버지는 고향 평양을 등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야 했다. 책에는 평양에서 해주를 거쳐, 개성을 지나 서울 한양으로 그리고 부산으로 가는 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순간 순간 목탄으로 스케치한 듯한 그림 하나하나에는 그 시대를 고달프게 기록하고 있었으며,우0리의 근현대사의 차가움과 냉혹함과 가혹함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멕아더 장군에 의해 , 인천상륙작전승리로 북한으로 올라갔던 국군은 중공군이 투입되면서,교착상태에 이르렀다.그 과정에서. 1951년 1.4 후퇴가 진행된다. 피난길에 떠나야 했던 피난민들은 중간에 유엔군의 공습에 의해서 죽어야 했던 역사가 있다. 어린 아기는 젖동냥으로 살아야 했거,기아와 영양실조가 속출했다. 북한 전투원이라 생각한 것이었고, 눈앞에서 시체를 보고,그 시체를 타넘어서 가야 했던 살아있는 역사적 아픔이 우리에겐 있다. 4살 어린 아이였던 윤대경은 아버지 윤종식 화백이 남겨놓은 그림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하나하나 모아서 ,어머니와 큰 딸 혜경의 죽음에 대해서 아버지 윤중식의 28 장의 6.25 피난길전쟁 스케치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