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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뮤직비디오 속 코리는 훨씬 크다. 함게 춤추는 여자들 위로 키가 한참 솟아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평범한 키다. 그렇다고 작다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농구선수로 르브론 제임스만큼 크지는 않다는 거다. 그보다는 스테판 커리에 더 가깝다.
"목소리가 정말 좋아." 그가 말한다."레슨 받아?" (-37-)
코리는 트랙을 재생하고 낱장의 종이에 음표를 적어 넣는다. 이 일에 어찌나 몰입하는지, 사람들이 그르 음악 천재라고 부르는 것도 당연하다.
"좋아, 이 곡으로 공연을 시작하면 될 것 같아. 그 다음에는 <당신에게 가까워질수록>을 부르고 네 솔로를 넣자."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고 온몸이 떨려온다.
"제가....솔로를요?" (-157-)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인 두 경찰은 문턱 안으로 조금도 들어오지 않지만 그들이 엄청난 존재감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네?" 내가 새끼손가락으로 멀리사의 머리카락을 비비 꼬며 말한다.
"인챈티드 존스 맞습니까?" 여성경찰이 묻는다.
"음.네."
"따로 얘기를 좀 나눠야겠는데요."
나는 그래도 될지 확신하지 못하고 코리를 바라본다.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230-)
주차장 맨 뒤에서 선팅한 창문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익숙한 검은 메르세데스가 출구 근처에 서 있다. 내가 알아차이릴 수 있을만큼 가깝지만, 누구도 다시 쳐다보지 않을 만큼 멀리 있다. 저 새까맣고 화려한 자동차는 몰라볼 수가 없다.
코리다.
선팅한 창문 안을 볼 수는 없지만 안에 코리가 있다는 건 안다. 엔진을 켜 둔 채 그 안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나를 데려가려고,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318-)
"다 끝났어,인챈티드. 우리 아빠를 같이 끌어내리지마."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뭐라든 데릭은 내가 아닌 자기 아빠를 선택하리라는 것을.나는 시계를 떨어뜨린다. 내 희망과 함께.
(-400-)
거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미줄을 치고, 그 거미줄에 걸릴 수 있는 먹이를 기다린다. 거미는 거미줄에 걸리지 않으면, 거미는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고, 죽어간다. 반면, 거미줄에 걸린 약한 곤충은 거미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공포스럽게 생각한다. 거밋줄에 빠져 나오고 싶어도,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잇지만, 벗어나지 못할 때도 있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을 발견한 인간의 시선이 거미줄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이런 현상은 우리 인간사회에도 잘 나타난다. 어떤 사람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면, 거미줄에 거린다 하더라도,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 티파니 D. 잭슨 『그로운 』에는 주인공 슈퍼스타 코리 필즈가 있으며, 코리 필즈는 스티비원더의 노래르 유튜브 영상으로 올려 천재 소리를 듣게 되고, 열세살 부터 돈을 모으고 있었다. 이제 코리 필즈는 스물 여덟이다. 한편 코리 필즈 옆에는 열일곱 소녀 인챈티드 존스가 있다. 둘은 갑과 을의 관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소녀서애자 기질이 있는 코리 필즈였다. 인챈티드 존스는 코리 필즈의 권위에 눌리고 말았고,자신이 서서히 거미줄에 걸리고 있었다. 인챈티드 존스는 거미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빠져나올 의지가 없다. 경찰이 있었고, 인챈티드 존스의 부모도 있었지만, 스스로 거미줄에 나오지 않은 채, 가스라이팅, 스토킹을 당하고 있지만, 거기서 헤어나올 생각조차 없다. 이런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2018년 시작된 미투 운동을 보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내몰리게 되면, 벗어날 생각조차 없고,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않하게 되는 소극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인챈티드 존스가 자신의 의지를 적극 말하지 않고, 자신이 당한 불쾌한 경험들을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고,구출해주려는 이들에게조차 말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