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과거시제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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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는 깨달음이 휘발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휴가를 냈다. 책임감 강한 자신의 의식이 행정 절차라는 인위적인 의지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최대한 건성으로. 유희 자신이 현장 실사 책임자였으므로 휴가를 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았고 거짓 대답을 쥐어짤 필요도 없었다. 열흘 넘게 쉬지 않았으니 쉴 때가 되기도 했다. (-11-)

실습실은 장문이 다 막여 있었다. 너무나 22세기스러운 바갇붕경 닷이었다. 잠간이라도 그 붕경을 보고 있으면 격리 실습이 일종의 연극이라는 사실을 개닫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달 동안이나 비가 내리는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나에게 비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은 외부인들이 가지고 온 우산분이었다. 아, 단 한 볌 그기만 한 장문이라도 진자 비가 들이지는 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가! (-65-)

그 사람을 만난다. 강은신을.

결코 이 세상에는 속하지 않는 완전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 때로는 주어이고 때로는 목적어여서 그 사이에 들어갈 술어를 잘 골라내기만 하면 몇 번이고 둘이 함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문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영혼의 파트너. (-121-)

현실적으로도 한국 우주군은 많은 부분을 연합우주군에 의존했다. 일단 우주군은 있는데 우주선이 없다시피 했다. 위성 해킹이나 정보전 쪽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직접 우주로 날아가는 일은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연합우주군은 캐슬러 신드롬을 막기 위한 집단방위체제였다. 우주 전쟁이 일어나고 연쇄 폭발로 인해 위성 궤도 전체가 마하 25의 속도로 떠도는 우주 쓰레기들로 가득 차는 사태, 그 일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이 조인한 국제 협약의 집행기구, 한국 정부도 여기에 꽤 큰 액수의 분담금을 내는 대신 우주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는데, 그 분담금 관리 기구로 만든게 한국 우주군이었다. (-173-)

(아니리)

옛날 서울 청파동에 지하임이라는 청년이 살았겠다. 나이 스물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서른 넘어까지 진귀한 재주를 익혔으니, 이름하여 로봇 조종술이라. 세상천지 백 명 남짓 희귀한 재주이되 로봇이 전 세계 열대 안팎으로 레드오션이 따로 없었더라. 백수 모양으로 낮에 자고 저녁 용돈 벌러 가기를 수 삼 년이나, 일야에 귀가하여 우편함 고지서 봉투를 개봉하여 본즉 겉면은 고지서이되 내용은 채용 통지라. (-209-)

가끔 본명인 한민지로도 불리곤 하는 한먼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집 식탁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부산스럽게 꺼내 놓았다.

"이걸로 한 번 해봐. 내가 신기한 거 깔아놨는데 효과 본 사람이 많대."

"이게 뭔데? 슬럼프에 잘 듣는 약이라는 건가? 효과 본 사람이 소설가래?" (-274-)

SF소설을 장르로 하여 , 자신만의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배명훈 작가의 소설 『예술과 중력가속도』 을 읽은 바 있다. 그 소설은 열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중력과 우주라는 핵심키워드로 국내 SF 마니아를 사로잡았다. 여기서 한국인은 추리,스릴러 , 탐저 소설을 주독자층으로 하는 이들이 다수인 반면, 어느 정도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으며.그들을 SF덕후라고 부르고 있다.

먼저 이 번에 읽게 된 『미래과거시제 』는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가 쓰고, 소통하고,대화를 하는 언어에 대해서, SF 장르와 엮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이 SF 소설인지, 판타지 소설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조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분명 작가 배명훈의 오랜 시간을 써서 단편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중단편 소설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요소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를 이질적으로, 혹은 소멸되고 있는 언어를 현재에 끌어온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신선하였고, 나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았다. 고어로 남아 있는 판소리SF를 쓰게 된 이유 또한 소리꾼 이자람의 팬이기에 가능하였고, 그동안 보지 못한 SF 판소리 소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단편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는 우리의 언어에서, ㅊ,ㅋ,ㅌ,그리고 쌍자음을 쓸 수 없다면 어떤 일이 일아나는지 보여주는 단편이며, 익숙하고, 친숙한 언어가, 불편하고, 이질적이며, 낯선 언어로 바뀌는 스토리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잇었다. 특히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작가가 오탈자를 쓴 것이라고 착각했다. 소설 제목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이 소설을 돋보이고 있다. 우리는 언어를 쓰고 있지만, 그 언어에는 패턴이 숨어 있고,그 패턴을 깨는 파격적인 요소가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지 보여주는 SF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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