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숙이의 숙제 책 읽는 어린이 연두잎 10
유순희 지음, 오승민 그림 / 해와나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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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니는 대체 언제 오나?"

명숙이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 많은 언니는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쉬는 날 몇 번 오고는 몇 달째 소식이 없었다. 언니는 봉제 공장이 닭장 같다고 했다. 여덟 평 작업실에 서른 명이 붙어 앉아 허리도 폐지 못하고, 천을 자르고, 나르고, 미싱을 밟는다고 했다. (-14-)

"십 원만 줘요."

진주를 업은 명숙이는 소금 그릇을 이고 골목을 내려가는 엄마를 따라갔다. 일요일인데도 엄마는 장사를 나갔다. 아버지는 댓바람부터 나가 버렸다. 이런 날은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진주를 봐야 한다. 하루도 길고 배고픔도 길다. 멀건 된장국에 밥 말아 먹는 것도 , 고추장에 비벼 먹는 것도 지겹다. 온종일 진주를 보는데 과자 하나 사 먹을 정도의 돈은 주고 갔으면 해서 엄마를 쫓아가며 말했다. 더구나 엄마는 돈이 많다. 장사하고 돌아오면 허리에 찬 전대를 풀어서 바닥에 돈을 쏟아 놓고 센다. 꼬깃꼬깃한 지폐도 있고, 구릿빛 동전들도 많다. 어느 때는 동전이 데굴데굴 코앞까지 굴러온 적도 있었다. 손바닥으로 덮어서 숨길수도 있었지만 엄마를 속이는게 싫어서 도로 굴렸다. 그렇게 했는데도 엄마는 명숙이 맘을 몰라줬다. (-32-)

"할아버지, 이게 숙제인데요.'柳 明 淑' 이게 한자로 제 이름인데....,이 듯이 뭔지 알아오래서요.,...."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명숙이의 한자 이름을 자세히 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64-)

"아버지, 나 하교 가야 한다니까요. 선생님이랑 약속했잖아요. 학교 보내 준다고!"

"학교가 뭣이 중요하다고 이리 난리 치냐. 그리고 저것은 누가 보냐?"

아버지는 진주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선생님과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너무나도 쉽게 깨 버렸다. 도저히 못 참겠다. 명숙이는 봉지가 터져서 쫘르륵 쏟아지는 쌀알처럼 지금껏 참았던 말들을 토해 냈다.

"아버지 자식이니까 아버지가 보라고. 난 학교 갈거라고!"

"이것이 미쳤나?" (-72-)

언니와 잠들기 전에 주고 받았던 말이었다. 언니가 어두운 밤을 같이 넘어가자고 했는데 약속을 어겼다. 맨날 기다렸는데 오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어니가 일부러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지금 자신의 마음이 그랬다.

'진주야 ,지금은 갈 수 없어.' (-84-)

유순희 작가의 책 『명숙이의 숙제』은 자전적 동화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1960년대~1970년 대, 청계천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다녔던 실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명숙이의 삶은 어두웠다. 술에 취해 살았던 아버지,장사를 해야 했던 엄마, 어린 진주를 돌봐야 했던 명숙, 언니는 봉제 공장에 다녔고, 명숙은 순수한 삶 그 자체였다.

자전동화는 1950~1970년 사이에 태아난 이들이라면 공감가는 이야기가 담겨진다. 국민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봉제공장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이를 챙길 여유가 없었고, 내 아이가 얼른 독립하여, 피붙이로서, 벗어나길 원했다. 대책 없이 아이르 낳아야 했던 그 시절, 밥그릇 하나 줄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명숙은 매일매일 돈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이해하지 못한다. 착하게 살고 싶었던 명숙은 세상이, 명숙을 착하게 살게 만들지 않았다.

명숙이의 숙제는 ,자신의 이름 명숙의 한자 뜻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들은 명숙이 공부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탐탁치 않았다. 매일 매일 술에 취해 살았던 아버지, 글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학교에서 재촉하는 육성회비조차 낼 수 있는 가정환경이 명숙 앞에 없었기 때문이다. 명숙은 아바의 모습과 장사를 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가정환경이 명숙 앞에 놓여지지 않는다. 이 자전적 동화를 지금 MZ 세대가 읽는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초중학교 의무교육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86 세대 부모들은 그런 삶을 얻지 못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항상 사치였고, 한자 숙제를 하려고 하는 명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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