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주인
강희찬 지음 / 북레시피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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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북방 오랑캐가 세운 나라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청은 조선에게 형제가 아니라 황제의 나라가 되었다. 십 년 간격으로 두 번의 전쟁이 있었고 두 번의 전란으로 조선이 버텨낸 시간은 육십 여 일, 무능과 무기력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조선의 능력. (-57-)

내관과 궁녀들의 얼굴로 익혀나갔다. 궁의 내밀한 정보는 이들이 쥐고 있었고 그들은 왕의 몸에 있는 한 올의 터럭까지도 알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돈으로는, 환심으로든 무엇이든 값을 치르고 사들여야 했다. 궁은 말들로 무성한 하나의 수이었고, 사람들은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에 숨어들어서는 무슨 일이 터지기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귀를 세우고 눈을 빛냈다. (-130-)

"수삼, 건삼 무역도 이제 시작 단계지만 홍삼은 몇몇 만 냄새를 맡았어. 아직 누구도 주도권을 쥐지 못했네. 문제는 인삼을기르고 캐내고 홍삼을 만들려면 칠팔년이 걸린다는 건데....

그러니 굳이 밭을 사서 재배할 필요 없이 좋은 임삼을 좋은 가격에 사고 홍삼은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으로 하면 될거야. 국경 함경도 쪽에 인삼을 키우는 자들이 몇 있지. 평안도 쪽도 좀 있고 그자들과 계약을 해서 인삼을 사들이면 돼." (-197-)

남이 선택해준 인생에는 분명 후회가따라온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는 동궁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247-)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선과 악을 구분한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나쁜 쪽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저하와 나, 그리고 민시와 하유를 지켜다오!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허리르 숙여 해태와 눈을 마주친 그는 싱긋 웃었다.

궁을 나선 그는 집으로 향하지 않고 마포강 쪽을 향해 걸었다. 궐 박은 궁안과는 달리 딴 세상처럼 평화롭다. 두툼한 흰옷으로 몸을 감싼 건장한 사내들이 씩씩하게 입김을 뿜어내며 스쳐 지나갔고 지게에 독을 매고 붉은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도 개천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다리들이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317-)

소설 『의리주인 義理主人』은 실제 약사적 인물 홍국영(1748 ~ 1781의 역사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주선의 치세의 절정을 이룬 영정조 시대에,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게 된다. 영광과 치욕이 교차되는 과정에서,청나라는 묵방 오랑캐라 불리었고, 조선은 두 번의 호란을 겪은 직후였다. 명나라에 사대주의를 표방하였고,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다. 이런 변화는 역사적 흐름을 바꾸었고, 홍국영의 운명 또한 바뀌고 만다. 1776년 영조는 승하하였고, 세도 정치가 홍국영은 다음 인금 정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게 된다.벽파 주도에 의해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였고, 정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된 홍국영은 조선의 실세가 되고 만다.어떤 자리에 올라가게 되었을 때, 그 위치에서, 문고리 권력을 쥘 수 있었던 홍국영은 주요 자리를 꿰찰 수 있게 된다.하지만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위치나 직위에 다다를 때, 교만함과 그릇된 욕망으로 인해, 홍국영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만다. 자신의 여동생을 원빈 홍씨 (元嬪)이 되었고, 정조는 허락하였다. 하지만 원빈 홍씨는 빈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뒤 1779년 급사하고 만다.

인삼이 조선 물물교역의 핵심이었고,그 안에서 이권을 쥐고 있었던 홍국영은 누이의 죽음 이후 결국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악수를 두었다. 작가는 역사적 근거에 따라 『의리주인 義理主人』를 쓰고 있었으며,세도 정치를 꿈꾸였던 홍국영, 정조의 침묵으로 인해 홍국영이 처단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조의 사돈까지 노리던 홍국영은 왕실의 외척이 되고 싶었지만, 효의 왕후의 불편함, 신하였던 홍구영이 선을 넘어서는 행위를 자행하였고, 권력에 대한 야욕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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