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서소 지음, 박현주 그림 / SISO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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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 씨는 빌라 계단에 묶어두었던 자전거를 꺼내 낑낑대며 짊어지고 내려왔다. 오랜만에 꺼내는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는 서소 씨가 이혼을 하자마자 구입한 첫 번째 물건이다.

이혼에 관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던 그날, 서소 씨는 여러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잘 좀 살아보려 했던 인생인 쫄딱 망해버린 것만 같은 자괴에 속이 울렁거렸다. (-43-)

나이를 배제하기 위한 노력들을 열심히 했다. 어린사람들이 나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도록 몹시 공을 들였다. 공감의 제스처를 취하며 열심히 듣기만 했다. 머뭇거리던 아이들은 점점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이 불만을 말했기에 나도 말했다. 어린 사람에게 내가 나이로 밀어붙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 같은 걸 하지 않고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섭섭한 것들을 말했다. (-142-)

아버지는 1950년 1월에 태어났습니다. 1951년 1.4 후퇴가 있었고 아버지는 당시에 두 살이었어요. 국사책 같은 데서 보셨듯이 원래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보이던 전쟁이었는데 중공군이 투입되면서 뒤집혔죠. 할머니께서는 자식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아버지를 리어카에 싣고 가다가 떨어뜨렸는데 알지 못한 채 그대로 가버렸고, 뒤에 가던 피난민이 아줌마, 애 떨어졌어요, 라고 말해줘서 아버지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211-)

"아니, 내년 크리스마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면 안돼? 나 아마도 그때까지 5억은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나머지 5억원도 곧 갚을 테니 감시만 풀어달라고 할게. 그렇게만 된다면 나머지 5억 갚을 때까지 자주는 아니더라도 , 우리 가끔은 만날 수 있을 거야. 믿기지 않고 당황스럽겠지만, 나도 오빠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나를 믿고 내년 겨울까지 기다랴주면 안 될까?" (-295-)

노트북을 들고 나와 카페에 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다. 그녀의 계정을 찾아가서 사진, 그녀의 친구목록, 그녀의 게시물과 댓글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다시 보니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에는 그녀를 실제로, 그러니까 오프라인에서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 달아놓은 것으로 보이는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소통해요','페친해요' 따위의 메시지와 서로를 누구님 하고 부르는 사람들의 댓글만 있었다. (-341-)

내 앞에 놓여진 인생 이야기,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지혜를 배우고, 삶과 경험을 얻게 된다. 결국 우리 스스로 지식과 지혜를 얻는 궁극적인 목적은 삶을 견디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세상과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 오늘 봤던 사람이 내일 볼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가운데,우리는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한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책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은 독특했다. 에세이,산문집으로서, 10년간 일을 해온 회사원 서소 씨의 평범한 일상을 들어다 볼 수 있었다. 책을 쓰려고 책을 쓴 건 아니었다. 회사에서 억울하게 정직 4개월을 당했기 때문이다.여기에 휴직 1개월을 더해 5개월동안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50일간의 여유시간을 그는 알뜰하게 쓰고 싶었다. 10년 동안 회사원으로 일했기에 , 해보지 못한 것을 한다는 것, 서른 후반에 자기의 삶과 경험을 바꾼다는 것은 똑같은 상황에 놓여지는 이들이라면, 이렇게 하긴 쉽지 않을 듯 하다. 준비되어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다는 걸, 회사원 서소씨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비어 있으면, 불쑥 불쑥 걱정,근심이 쓰나미처럼 몰려 오기 시작한다. 일이 없다는 불안도 그러하지만 ,10년동안 내 몸에 맞춰질 일상이 갑자기 엉키기 때문이었다. 그는 워커홀릭이었으며, 항상 나만의 시도와 실험을 하게 된다. 내 몸에전립선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호르몬 검사를 하게 되었으며, 간호사가 자신의 치부를 보는 것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항우울제 약을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주어진 시간, 채워지는 삶에서, 눈앞의 삶을 영위하는데 급급하지 않는다. 삶의 여백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으며, 소소한 일상 속에 여백, 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조건이 내 앞에 놓여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결정을 할지 스스로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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