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우주로 가는 길을 열다
오승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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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발사장에 세워져 있는 48미터 높이의 서비스타워로부터 각각의 단 별로 펼쳐지는 4개의 엄빌리컬 연결 장치와, 발사헤드 바닥의 연결장치를 수직으로 세워진 '누리호' 와 결합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한다. 엄빌리컬 연결 장치는 소위 '탯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 발사 준비단계부터 지상 장비와 발사체를 연결하고 있다가 이륙하는 순간 분리되도록 되어 있다. 마치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 영양분을 공급받는 통로 역할을 하다가 태어나는 순간 탯줄을 자르는 것과도 같은 역할이다. (-34-)

러시아의 우주 분야 연구는 서방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시작이 빨랐고 도전적이었다. 또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로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고 전문성도 높았다. 러시아에서 만드는 우주발사체의 대형 로켓에 대한 대부분의 연소시험과 발사체 종합시험 등은 '니히마쉬'라는 전문 시험기관에서 수행하였다. 항상 폭발의 위험성이 있고 매우 위험한 시험들이 많기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골짜기에 각종 시험장들이 있었다. (-111-)

천문우주과학 연구소 '우주공학실'과 한국기계연구소 '유체기계연구실'을 합쳐 1989년 10월 10일 한국기계연구소 부설 항공우주연구소가 설립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 당시 초창기 창립 멤버는 44명이었다. (-168-)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에 나로우주센터 발사대를 떠난 '나로호'는 1단 작동구간인 215.0 초에 페어링을 정상적으로 분리했다. 이후 1단과 2단 분리는 231.3초에 이루어지고, 395.0초 303키로미터 고도에서 2단 킥모터가 점화되었다. 정상적으로 60초 연소 후 540.0초에 나로과학위성을 성공적으로 분리시켰다. (-210-)

며칠전 , 나로호 우중항공개발자 김성수 교수의 『제2의 대항해 시대:21세기 우주탐사』 강의를 들었다. 우주에 대해서, 눈이 반짝반짝 거리는 청소년이 상당히 많았고, 30분간의 질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우주물리학에 대한 청소년의 호기심을 흥분하면서 지켜보았다.

대한민국의 우주개발의 역사는 1993년이 시작이다. KSR-1 1차 발사 성공, 그리고 2차 발사성공으로 이어진다.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실패, 2010년 2차 발사 실패 , 2013년 나로호 3차 발사 성공으로 이어지고,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은 2022년 6월 20일 성공에 이르렀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나로호 발사 뿐만 아니라,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였으며, 달에 쏘아올리기 위한 우주선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미래릐 희망을 밝히고 있었다. 먼저 놓칠 수 없는 것 하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본부 책임연구원 오승협 박사는 우주개발 과정에서 만들었던 비하인드가 책에 소개되고 있었다, 러시아 과학자 틈바구니 속에서 개무시를 당했던 기억, 포기할 수 없었다. 이후 전략물자로서, 우주발사체가 러시아에서, 고흥으로 오는 과정에서, 극비에 움직여야 했던 시간을 넘겨야 했다.발사 몇 분 전 발사 실패 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이해한다면,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혈을 기울였음을 이해가 된다. 우주개발과정에서, 러사아 할아버지 과학자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기억, 러시아 자체 보안으로, 꼼수를 써서,우주 기술을 눈과 귀와 손으로 기록해왔던 시간, 나로호 발사성공, 누리호 발사 성공 당시 물리과학자들이 서로 꺼앉고,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은 오랜 시간, 단 하나의 성공을 위해서, 피와 땀으로 얼룩진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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