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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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대럴이 52블루의 독특한 주파수에 흥미를 느낀 데는 이 주파수 덕분에 추적이 쉽다는 이유가 컸다. 그의 울음소리는 늘 구분되었고 그가 어디서 움직이는지도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다른 고래들은 구별하기가 어렵고, 움직임 패턴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고래 중 이 고래만이 지니는 특성 때문에, 익명 집단에 묻혀 흐리해지는 다른 고래들과 달리 52 블루라는 개별 생물과는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19-)

우리는 이렇게 별들을 다시, 또다시 밝힌다. 타인의 평범하고도 까다로운 몸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우리의 평범할고 까다로운 몸을 지니고 나타남으로써 ,중요한 건 그런 일이 다시 , 또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 단 한 번의 지혜를 실천하거나, 단 한 번 타인이라는 위기에 대처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타인의 삶을 기꺼이 바라보아야 한다. 비록 내 삶이 지독하게 느껴질 때라도, 그래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른 껍데기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질 때라도, 잠시라도 깃들 껍데기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한 마리의 피치스를 발톱으로 끌어내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피치스까지 끌어낼 때라도. 휴스턴의 새벽 3시 30분 모닝콜은 잠시 깃들 껍데기가 아니다. (-86-)

잠에서 깨어, 당신 얼굴에 미끈거린다고 느꺄질 만큼 부드러운 목화 보푸라기, 너무 많이 빨아서 찢어진 섬세한 면포가 닿는 것을 느끼고, 어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두려움을 떠올린 순간, 당신이 처음 보인 반응은 잠을 자느라 부어서 축축해진 데다가 보푸라기로 범벅된 당신 얼굴에 대한 가벼운 역겨움과 두려움이다. 망가진 것 같은, 모르는 사이에 지저분하게 벌레에 물린, 피묻은,모욕당한. (-160-)

처음에 , 라스베이거스의 기쁨은 가능성, 욕망, 갈망, 어쩌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상상에서 왔다. 베이거스 조가 주는 기쁨은 모두 기대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러 보스턴까지 얼어붙은 겨울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달려가는 기쁨, 세상의 꼭대기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나의 원룸 아파트에서 과일 바구니를 닮은 네온 조명 불빛을 상상하는 기쁨이었다. 조와 보낸 첫날에 키스를 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 키스가 어땠을까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 (-275-)

네가 라임만 하다가 아보카도만 해졌을 무렵, 나는 피클을 끝도 없이 먹었어. 이로 베로 무는 짭짤한 맛이 좋았거든. 녹은 아이스크림을 그릇째로 마셨어. 그건 부재를 암시하지 않는 갈망이었어. 나에게 속한 갈망이었어. 갈망(longing)이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임신에서 비롯되었지. 1899년에 나온어느 사전에서는 갈망을 "임신한 여성이 겪는 특정하고 종종 변덕스러운 욕망의 하나"라고 정의하고 있어. (-343-)

책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 는 레슬리 제이미슨가 쓴 에세이집이다. 이 에세이집은 단순히 어떻게 에세이를 써야 하고, 많은 이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지 하나하나 코칭하고 있었다. 저자는 에세이에는 갈망, 관찰,거주가 채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주제가 어떻든, 어떤 소재를 다루든, 어떤 장르를 다루든 말이다. 나를 관찰하고, 타인을 관찰하여,그 안에서, 어떠한 깊은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사람들은 에세이집 한 편을 통해, 철학적인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관찰은 상사으로 이어지며, 생각과 사유,경험을 연결한다. 단순히 누군가의 삶이 아닌, 그 사람의 삶 속에서 꺼내 어떤 삶의 원칙과 절차가 독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글쓰기의 힘을 가중할 수 있으며,글을 통해 한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보여주고 증명해 낼 수 있다.

에세이에는 나만의 자아가 투영된다. 그 자아에는 관찰과 갈망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그 무언가 응어리진 갈망이 욕구와 욕망으로 투영되어 세상에 놓여질 때,나의 이야기와 나의 인생이 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에세이에는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찰을 통해 생각, 상상, 감정, 느낌을 얻는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관찰을 하게 되면, 사소한 것에서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다. 발명이 아닌 발견 하나가,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을 쓰나미처럼 밀어버리고, 새로운 선입견과 편견으로 채워 나갈 수 있다. 돌이켜 보면, 위대한 철학자는 위대한 에세이스트였다. 소크라테스도, 플라톤,칸트도 마찬가지다.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내면의 생각과 가치관, 생각들을 책에 녹여낼 때가 있다.그 한 권의 책, 세심하고, 응축되었고,함축적인 글과 문장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얻게 해주고,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인생을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나에게 이로운 것이 타인에게 이로운 것이 될 수 있으며,우리에게 삶의 원칙과 절차, 더 아나가 서로에게 상호 이익이 되는 삶으로 완성될 수 있다. 한사람이 쓴 글 하나가, 한 권의 에세이가 누군가의 삶 전체르 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의 원천이 ㅚ 수 있다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책, 독서가 우리에게 여전히 큰 의미와 가치로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으며, 우리 스스로 나의 삶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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