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염기원 지음 / 문학세계사 / 2023년 3월
평점 :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던 고양이 몇 마리가 내 발소리에 놀라 후다닥 달아났다. 오르막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위를 향했다. 저만치 달이 보였다. 언덕배기를 오를 때면 걸음마다 앓는 소리를 내던 엄마도 저 달을 보면서 이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오르내렸을 것이다. 겨울에는 연탄재를 아무리 뿌려도 미끄러워서 엄마는 눈이 조금만 와도 외출을 하지 못했다. (-12-)
나는 우리 네 식구 중 최초이며 유일한 정규직 노동자다. 공장 일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였다. 아빠는 집을 나간 상태였고, 군대에서 나온 오빠 새끼는 대학생이랍시고 하는 일도 없이 종일 책만 읽었다. 엄마는 혼자 집 밖에 나가는 것도 힘겨워할 때였다. 시청 공무원이 되는 것과 공장에서 일하는 선택지 중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했다. (-65-)
하연 언니는 우리 황지 꼴통스의 창립 멤버 중 하나다. 대졸 백수이자 만년 취준생으로 집에만 있던 언니는 밖에 좀 나가라는 엄마 뜽쌀에 돈을 벌겠다며 알바르 시작했다. 그게 우리 공장이었다. 일머리가 없어서 답답한 스타일이었는데 사람은 또 착했다. 사회생활에서 그런 유형과 친해지면 손이 많이 간다. (-139-)
그리고 작년 가을,정확히는 엄마의 기일이었다.비번이어서 집에 혼자 있던 나는 엄마 사진을 보며 그때 오빠가 했던 질문을 내게 다시 던지곤 했다.우리는 왜 사는 걸까?그냥 돈 버는 기계로 살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닐 것이다. 동물처럼 그저 번식이 삶의 최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건 어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거지? 엄마, 말해줘. 인간은, 아니 나는 ,왜 사는 거지? 엄마는 답이 없었다. (-175-)
사기꾼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라더니, 북 콘서트 행사가 라고 보니 북 콘서트가 아니었고, 메타버스와 NFT 분야 컨설팅 한다던 회사가 알고 보니 다른 일을 하는 곳이란다. 사기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단체라나.
"지랄 , 그렇다고 치자. 이제 대답하시지. 진동호가 대표인 이유를."
"네가 위험하니까."
"뭔 개소리야? 내가 왜 거기서 나와?"
"먹으면서 얘기하자."
오빠 새끼가 잔을 내밀었다.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나 오늘 딱 한 끼 먹었어. 먹으면서 얘기하자. 너 해장국 좋아하잖아. "(-213-)
1995년 56부작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 가 방영되었다. 그 때 당시 드라마의 인기는 타의추종하였으며, 태백시 황지에 새로운 지역문화 경제 인프라의 주축이 되었다. 탄광 산업으로, 지역경제를 떠받쳤던 강원도 태백시는 10만이 넘는 도시였고, 골목을 지나가는 똥개도 1만원 지페를 다닌다고 할 정도로 , 흥청망청 도시 태백 이미지였다. 그랬던 태백시는 옆 지역 강원도 동해시, 삼척시,정선군과 연계되어, 문화 관광 도시로 거듭났지만, 사양산업으로 바뀐 탄광은 폐광이 되고, 광부가 지역을 떠남으로서, 도시 경제가 낙후된 채 방치되어 버린지 오래다. 현재 태백시 인구는 4만이 안되는 , 군단위 지역보다 더 적은 도시에 불과하다. 태백시를 언급하였던 것은 , 소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의 주무대가 태백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영주와 태백, 봉화의 장을 돌아다니는 보부상이 흥했을 정도로 서울, 수도권 산업 경제를 부러워하지 않았던 세 도시는 이제 낙후된지 오래되었고, 전국 최저 인구의 정선군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정선 카지노 유치에 올인하였고, 덕분에 한탕주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 인구 3만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소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이 친숙하게 느껴진 이유,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도 그래서다.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흔하게 들었던 태백에 대한 기억들이 추억,회상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주인공 채하나는 책만 읽는 백수에 가까운 오빠와 삶의 가치를 잃어버린 아빠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실제로 세 가족이 아닌 네 가족이었지만, 엄마는 돌아가셨고, 주인공 채하나는 공장 노동자로 율일하게 정규직 직장을 가지고 잇었다.
소설은 보다시피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었다.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고 있었으며, 채하나의 아빠는 카지노 도박장에 상주하다시피하였고, 엄마는 열심히 일했건만 그 벌어놓은 돈은 몽땅 아바의 카지노 도박 자금이 되고 만다. 자신은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단호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며, 내 삷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황지 꼴통스 멘버 중 하나였던 하연 언니,그리고 주인공 채하나, 여기에 채하나의 오빠 채강천이 함께 황지 꼴통패밀리로 거듭나게 되는데, 가난하고, 삷의 의미조차 잃어버린 폐광조시 태백 황지 꼴통스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성장과 성공, 삶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남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그래서였다. 그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고, 때로는 무모하지만, 내 지인이 말한 것처럼 낙후된 도시에서, 똘똘하고, 공부잘하는 아이들은 대도시로 취업, 출세를 위해 다 떠나게 되고, 인생 루저로 남아 있는 공장 노동자 채하나, 채강천 남매와 하연언니, 그리소 채씨 남매(채하나, 채강천)의 아버지가 지키는 시골 아닌 시골 태백을 지키는 눈물겨운, 머스마 꼬추 떨어지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