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할머니, 지금 미국 가는 중이야
정경위 지음 / 북크로스비 / 2022년 9월
평점 :
딸 가족은 미국에, 아들 가족은 독일에 살고 있다. 해마다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남편이 제안했다. 더 늙기 전에, 돌아가며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모이자고. 그 실현이 올해 처음 멕시코 칸쿤에서 이루어졌다. 선친의 말씀처럼 무릇 사람의 계획이란 "송아지가 메루치 되기"십상이지만, 이번만큼은 메루치가 아닌 포동통한 송아지가 되어 뿌듯하다. (-10-)
40년 전 갓난쟁이 내 딸이 울 때 나는 무척 처량하고 애가 불쌍했다. 이 세상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생문이 훤하게 보였다. 6년 전 첫 손녀가 울었을 때, 나는 딸이 불쌍했다. 저 갓난쟁이랑 어찌 살아갈꼬 고단한 딸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이 둘째 손녀를 보는 지금은 '애는 다 우는 거야. 표현 방법이 그것 밖에 없으니까. 울어라 울어 누가 겁막을 줄 알아? 와 , 성악가 실력이네' 하며 이웃이 달려올까 무서워 안는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버리고 팔다리를 있는 힘껏 뻗대며 우는 모습이 세 모녀 다 닮았는데 이번엔 귀엽다. 녹두빛 변을 몇 번 싸고, 등과 허리가 아파도 내 품에 쏘옥 따뜻하고 포근하게 안긴 손녀는 그저 예쁘기만 하다. (-66-)
밤새 달린 유람선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멈추었다. 우리는 시내 관광과 미술관을 방문했다. 강을 끼고 발전한 형태가 암스테르담과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많이 달랐다. 집들이 두 도시 중간 크기로 느껴졌고 더 깨끗해 보였다. 아름다웠다.
8세기부터 시작된 바이킹의 역사, 15세기 전후 120년 동안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지배한 왕국,"소박한 일상을 중시하는 "휘게를 모토로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인구 570여만 명의 덴마크 문화에 간신히 말만 들은 계기였다. (-130-)
일요일 아침 행사인 조깅을 하는 딸 옆에서 걸었다. 이제는 엄마 따라다니는 딸이 아니라 역으로 딸을 졸졸 따라다니는 노모가 되었다. 나쁘지 않았다. 못 알아듣는 교회에 출석한 후, 생일을 맞은 사위를 웨이코에서 제일 크다는 일식당 에서 축하해 주었다. 스시와 징기스칸 구이 (연어,스테이크, 닭고기)를 먹었다. 저녁에 미역국과 불고기, 그리고 그제 한인마트에서 사온 뚜레쥬르 케이크로 잔치를 끝냈다. 미국의 어느 케이크보다 맛있었다. (-216-)
딸이 어제는 동생 가족을 루이지애나 음식점으로 초대하고 오늘은 온 식구 이별의 외식을 하게 했다. 아들네가 내일 떠나기 때문이다. 개점한 지 2년쯤 된다는 인기 있는 식당이었다. 천장과 벽면이 뻥 뚫려 창고같이 넓은 공간이었다. 젊은 손님들이 많은 탓인지 집밥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식당이 이렇게 매력이 없다니 점차 안방 노인이 방콕 신세가 되는 절차를 밟고 있나 보다. (-280-)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인순이 살고 있는 솔리비타로 갔다. 오랜도 남동쪽에 자리잡은 솔리비타는 편의시설을 골고루 갖춘 휴양지면서도 55세 이상 6천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단독주택단지였다. 인순이의 안내로 온갖 운동 기구가 비치된 체육 시설,옥외 온수 수영장 등을 구경하였다. 볼룸 무도회장에서 트럼펫을 불며 연습 중인 할아버지 밴드도 보았다, 골프장도 2개나 있다고 한다. (-287-)
작가 정경위 교수는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하과 교수생활을 30년 이상 근무 후 퇴직하였으며, 딸과 사위, 손녀가 있는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들이 있는 독일, 그리고 딸이 있는 미국, 딸은 미국에서 자신처럼 교수로서 일을 하고 있었다.
책에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시카고, 크루즈 여행, 웨이코, 올랜도를 다녀온 미국 여행이야기를 내비치고 있으며, 책에 대해서 나의 기대감과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었다. 즉 내 지인이 한국에서, 집-교회-가게 라는 평범한 도돌이표 인생을 살다가,최근 해외여행을 떠난 기억이 남아 있어서다. 물론 이 책에서 자유를 찾아서 해외여행을 떠났을 거라고 지레짐작하였다. 하지만 딸이 있는 곳으로,2013년 이후 거의 매해 미국으로 다녀온 자신의 일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문화가 반영되고 있으며, 할로윈 데이에 대한 저자의 미국 문화에 대한 소회가 채워진다. 40년전 예비 엄마였던 자신의 모습이 어느 덧, 할미가 되어서, 자신이 나흔 딸이 아이를 낳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새색시였던 처량했던 자신이 이제는 노모가 되어서, 손주, 손녀의 재롱을 보아야 했다. 여유롭지 못했던 1980년대와 이제 손녀를 보게 되는 여유로운 삶으로 바라보면서, 눈앞에 펼처진 세상에 대한 여유로움이 묻어나 있다. 아이를 낳으며, 처량하게 느껴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걱정,근심으로 살았던 삶이 이제 귀여워진 삶, 행복과 율로,휘게로 바뀌었다. 즉 자신의 삶에 대해서, 경제적으로 너그러워졌으며, 퇴직 이후 ,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