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그리고 유신 - 야수의 연대기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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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역사적 경험의 기준에서 일본이 여몽연합군에 받은 피해는 기록물 창고의 맨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파묻힌 수준으로, 해당 분야를 연구한 역사학자가 아니면 전혀 모를 정도의 일이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는 전근대 여사를 통틀어 단 한 번의 경험이기 때문에 뇌리에 선명하개 남을 수 있었다." (-26-)

당시 일본 경제는 동아시아가 오랫동안 그랬듯이 은 본위제였다. 은이 곧 화폐가치를 결정하는 체제에서 은이 넘쳐나게 되니 감당할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들이닥쳤다. 모든 물가가 폭등하는 가운데, 쌀이 중국으로 유출되니 쌀값은 더욱 치솟아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때부터 쌀을 확보하지 않으면 일본은 죽는다는 관념이 생겨난다. 이는 조선 침탈의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한국인의 선조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일본은 미국에 야무지게 배웠다. (-46-)

근대민족주의가 형성되려면 짧게는 백 년 이상,길게는 수백년이 걸린다. 유산은 이 시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대신 유신에게는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유신은 국가의 자리에 천황을 앉혀놓고 국민에게 천황에 대한 무조건 충성을 강요했다. 근대는 '개인'으로부터 온다. 개인의 이익이라는 절대 명제에서 시작해 민족주의,시민의식, 애국심과 같은 가치에 봉사하는게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괜찮은 거래'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을 때 현대인이 알고 있는 근대국가가 탄생한다. 그런데 이 지점까지 오기 위해서는 경험치와 시간이 필요하다. (-88-)

일본의 도전장에 국제적인 반응은 어땠을까? 세계는 일본이 미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일본의 정신상태를 가장 의심한 건 청나라였다. 흥미롭게도 일본 역시 스스로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모함은 오히려 매력이 되어 일본은 홀린 듯 전쟁에 빠져들었다. 조슈와 사쓰마를 비교하자면, 조슈가 더 과격하고 막무가내였다. 일본 육군의 준비상태는 비상식적이었다. 일본 육군은 보불전쟁에서 독일이 승리한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뒤 군기가 엄정하고 획일적인 독일식을 따라했다. 그러나 전투에 있어서만 독일식일 뿐 나머지는 전근대적이었다. (-105-)

신해혁명과 같은 세계사적 사건은 관찰자들로 하여금 새삼 자신의 세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의 부유한 중동 산유국가 국민들에겐 민주주의와 누구에게나 평등한 인권이 없는 대신 석유에 푹 젖은 풍요가 보장해주는 생활수준이 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인에게는 둘 다 없었다. (-144-)

일본군은 반대로 행동했다. 중국 전선에서 삼광(三光) 이라 불리는 행위가 군사교리로 채택되었다. 삼광이란 모두 죽여 없애는 살광(樧光), 모두 태워 없애는 소광(燒光), 모두 빼앗아 없애는 창광(猖光) 을 합친 말이다. 일본군 내부에서는 신멸(燼滅,남김없이 없앰) 작전이라고 불렸다. 일본군은 마주치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잔인하게 고문, 강간하고 죽였다. 서양인도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에서 비슷한 짓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한중일은 다 같이 이름을 한자로 짓고 사서삼경과 '삼국지'와 같은 고전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점에서 이 섬멸 작전은 유별나다. (-209-)

박정희는 기회주의자인가,아니면 정말 진정성 있는 사회주의자였는가.먼저 확실한 사실만 말해보자. 박정희가 햐의 죽음에 지극히 분노하고 슬퍼하지 않았다고까지 주장한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일화가 기껏해야 일제가 패망하고 만주에서 돌아왔을 때 형에게 구박을 들었다는 일 정도다. 아버지에게 한 번도 혼나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다들 패륜아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가족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은 변화에 큰 역할을 한다. (-266-)

김영삼은 박정희의 의지에 따라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구속과 고문이 예정된 운명이었다. 그러나 김재규는 제명된 것만으로 충분하며, 더 이상의 탄압은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박정희에게 매달려 김영삼을 지켰다. 그러나 민심이 폭발하기에는 의원직 제명만으로도 충분했다. 국민은 김대중을 잃은 마당에 김영삼마저 빼앗길 수는 없었다. (-333-)

1274년 여몽연합군 1차 일본 침공이 있었다. 그리고 1281년 여몽연합국 2차 일본침공이 발생한다.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하였던 몽골이 고려를 삼키고,일본 마저 삼키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몽골이 일본을 침입할 때마다 강력한 태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그 태풍을 일본은 가미가제라고 부르고 있으며, 일본 특유의 관념이 생겨났다.이후에도 일본에는 여러가지 운이 작용하였다. 전세계에서 단일 나라로 국가가 교체되지 않는 나라 일본은 스스로 신의 나라,천황의 나라라고 부른다. 소위 일본은 스스로 천황이 지켜주는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일본에 대한 간략한 역사를 바탕으로, 홍대선 작가의 『야수의 연대기 유신 그리고 유신』를 읽게 되었다.

책은 메이지 유신에 대한 역사적 사실 도 파악할 수 있지만,그 무엇보다도 일본인의 정신세계, 일본인의 내면 속 관념을 들여다보고 있다.천황이 있으며, 천황이 교체하면, 일본 국호도 바뀌게 된다. 2019년 나루히토 새천황은 제126대 천황으로, 일본이 쭈욱 천황의 나라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한 일본의 관념을 깨부수려 했던 이가 맥아더 장군이며, 두번의 원자폭탄으로 일본이 패망할 당시 쇼와천황이 직접 앞에 나서서 일본의 패망과 항복선언을 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근대 국가 일본이 될 수 있었던 건, 천황이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으며,일본의 정치인은 천황을 십분 이용하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일본 사회를 벼락치기하듯 근대화를 하였고,근대 국가 일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된다.이런 일본이 가진 특징은 조선과 중국, 러시아가 해보지 못한 열강 반열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였으며, 일본이 청나라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고, 승리를 거둠으로서,세계 속의 아시아 열강으로 우뚝서게 된 이유였다.

여기에 20세기 초 , 일본이 한반도를 침범하게 된 관념을 살펴보자면, 그들이 쌀이 없어서 죽어야했던 잔인한 경험들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었던 당시의 모습을 볼 때, 한반도는 일본이 쌀생산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자산이었다.일본이 조선침략을 하는 동시에 적산가옥을 건축하고, 철도를 개설한 이유 또한 쌀 수탈을 위해서다. 조선에 근대화을 이룩하겠다는 명분으로 육지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하나의 관념이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무모한 도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 관념은 일본의 열등감,트라우마에 기인하였으며,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신대륙, 중립을 지키고 있었던 , 미국 진주만을 습격하게 되었으며, 태평양을 중심으로 놓고 전쟁을 하게 된,세계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지게 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성공과정을 똑똑하게 보았던 만주에 머무르고 있었던 관동군 교관 박정희는 이승만이 4.19학생의거에 의해 퇴출될 상황을 이용하였으며, 196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사회자본 인프라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일본메이지 유신이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일본 사회를 만들었다면, 박정희 또한 대한민국을 세계 열강이 차지하지 못하는 부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그리고 유신이라는 강력하고,견고하면서,잔인한 정치체제를 만들었다. 저자는 전두환 시절보다 박정희 유산 체제가 더 잔인했다고 말한다.유신체제 하에서는 독재 정권하에서, 쥐 한마리 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었고, 구미 선산에 살았던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했던 이유로 귀결되었다. 인간에게 심어진 관념은 그 관념을 만든 이가 죽은 이후에도 남아 있으며, 국가의 문화,정치,경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관념으로,21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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