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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자크 라캉 지음, 홍준기 외 옮김 / 새물결 / 2019년 1월
평점 :

모든 의미 작용 너머에 있는 앞의 시니피앙의 대답은 이렇다.
"내가 너의 욕망을 짜는 끈들의 운직이는 대로 너를 흔들 때 너는 네가 행동한다고 믿는다.그렇게 욕망은 힘이 컵지고 욕마의 대상은 증식되어 갈가리 찢긴 유아기의 분열 상태로 너를 되돌릴 것이다. 그래. 그것은 너의 향연이 될 것이다. 네가 나를 불러낸 이상 너에게 목석 같은 손님이 되어 내가 돌아갈 때까지." (-53-)
실제로 프로이트는 아버지 살해 이후 형제들까리 경쟁하는 상황 속에 기입되는 갈등을 중화시켜줄 참여의 필요성이 부성적 토템과의 동일화의 기초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디푸스적 동일화는 주체가 최초의 주체적 개인화를 구성하는공격성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일화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 이 거리를 설정함에서 이 동일화가 한 걸음을 구성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존경심과 비슷한 감정에 의해 이웃을 전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실현된다. (-141-)
1) 검은색 둘을 바라보고 자기가 흔색임을 안다.
이것은 바로 운동에 토대를 제공하는 논리적 배제다. 이런 논리적 배제가 운동에 선행한다는 것, 그리고 주체가 이 논리적 배제를 검은색 셋의 조합을 금하는 문제의 소여와 더불어 획득한다는 것은, 그 소여의 알림은 단지 안내말로 국한시키는 드라마적 우연성과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검은색 둘: 흰색 하나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때, 우리는 그 명백성의 즉각적 가치를 본다.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그 시간은, 이처럼 말할 수 있다면, 제로와 동등할 것이다. (-237-)
하지만 프로이트가 환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준 설명들은 우리에게는 통속적으로 보일 정도로 극히 근사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설이나 학설화라기보다는 말이라는 상징적 선물로 , 이 선물은 그것이 포합하고 있는 상상적 분유라는 맥락에서 비밀 협약을 품고 있으며 그것의 효력 은 후에 이 주체가 [한편으로는] 쥐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분석가에 보수로 주는 플로린 은화들 사이에 마음 속으로 설정하는 상징적 등가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341-)
한 시인이 재기 넘치게 너무나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거울은 우리 이미지를 우리에게 되돌려 보내기 전에 좀 더 반영하면 좋은 것이다. 주체는 그러한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포획이 그와 비슷한 사람 중의 하나, 예를 들러 공증인 코앞에서 재형되도록 한다면 그러한 법률 전문가가 습관적으로 코를 들이미는 장소들로 미루어 볼 때 그러한 주체가 코에 의해 어디로 끌려갈지는 신만 알 것이다. (-508-)
왜냐하면 언어 Language 라는 거인이 의미작용이라는 걸리버를 묶는 밧줄로부터 갑자기 풀려나와 다시 벌떡 일어나게 되는 조합술 말고는 여러분에게 있는 어떤 것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꿈이 그러한 일에 보다 적절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게임이 재생산하는 가공의 꿈의 전개 속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꿈의 가공만이 관심이 있다"라고 프로이트는 말하며, 나아가 "꿈은 수수께끼 그림"이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꿈으로부터 영혼의 말을 기대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의미만 갖고 있으며, 그것이 주는 잼, 즉 그것을 푸는 데서 갖게 되는 재미는 그와 같은 그림의 이미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의미작용이 부서지기 쉬우며 거기에 은폐되어 있는 시니피앙을 들려주는 효력만 갖고 있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562-)
물론 자신을 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장 생각될 만한 것을 생각하려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는 이 경쟁을 항상 관용할 수 없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혐오는 다음과 같을 때 완전히 명백해진다. 이 다른 곳과,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누구에게나 닫힌 장소, 그것에 대해 생각함이 없이 그래서 누구도 그것에 대해 어떤 타자보다 발견한 장소가 여태껏 누구도 생각한 적이 없는 개념적 결합을 이룰 때 말이다. (-653-)
하지만 우선, 개인적 의식으로부터 개인덕 세계의 발생을 도출시키려는 지나친 관념론 또는 오직 아이에 대한 관찰에만 근거하려는 정신분석의 현대적 유행에 내재하는 지나친 관념론에 대한 라기쉬의 공격에 동의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그러나 또한 그런 편견에서 우리가 벗어났다고 여기는 라가쉬는 낙관론자다. 그는 피아체 씨가 과학적 사고의 범주들까지도 포함시킬 정도로 , 공통적 세계의 발생을 개인적 의식 속에서 탐구하게 우리를 길들인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일까? (-764-)
내가 말하는 저항은 상상적인 것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나는 정신분석에 첫걸음을 내딛으면서 거울 단계 속에서 상상적인 것에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 후 상징성에 정확한 자리를 부여할 수 있었다.
상징적인 것 속에서 혼란이 초래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듯이 상상적인 것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똑같이 오래된 오류는 상상적인 것이 지배적일 때 혼동을 표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고쳐나가려는 것이다. 존스 또한 그러한 오류에 사로잡혔다. 즉 상징을 구체적인 것에 대한 '관념'으로 정의하면서 상징이 하나의 형상에 불과하다는 데 이미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존스의 편견은 베이컨적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그러한 편견의 각인을 받는다.과학의 결정적 토대가 감각기관에 관한 실험에 있다고 가르칠 때가 그렇다. (-844-)
왜냐하면 욕망이 문제인 곳에서 우리는 논리주의적 환원에 양보하기는 커녕 욕망이 요구 denande 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 속에서 또한 욕망을 요구로 환원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의 원동력 자체를 발경하기 때문이다. 생략해서 말하자면, 욕망이 말로 표현될 수 잇는 것,그것은 다름아니라 욕망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이렇다. 즉 욕망에 적합한 담화, 심리학적인 담화가 아니라 윤리학적 담화 속에서 말이다. (-947-)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지요. "판단 기능의 수행은 단지 부인의 상징을 창조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왜 프로이트는 판단이 기능하는 것은 시인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말하지 않을까요?왜냐하면 부인은 파괴 성향으로서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판단 형식 내부에서가 아니라 명료하게 제시된 상징성의 기본에 있는 태도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인의 상징의 창조가 억압과 억압들, 또한 그것에 의한 쾌락원이의 강압으로부터의 자립의 최초의 단계를 마련해주었다."
제가 머저 파괴 성햐을 쾌락원리와 결부시키지 않았다면 이 문장의 의미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1051-)
자크 라캉(Jacques Lacan, Jacques Marie Emile Lacan,1901. 4. 13.~1981. 9. 9.) 의 에크리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5. 6. ~1939. 9. 23.) 와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자신이 남긴 유일한 책, 에크리가 있다. 에크리를 읽어 보면, 1000페이지 분량의 상당히 두껍고, 인간의 행동 과 정신적인 관념론, 정서적인 병력 기제에 대해서, 분석 요약하고 있었으며, 사람에게 영혼과 무의식의 실체는 상징과 상상에 대해서,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어떻게 도식화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해 나가고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 에는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해 프로이트의 제자인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 7. 26. ~1961. 6. 6.) 에 대해서는 잠시 언급할 뿐이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은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되는데,그것에 대해서,프로이트는 임상실험을 통해 다양한한 저서를 써내려 간다. 반면 자크라캉은 같은 정신과 의사 임에도, 세미나를 통한 강연을 주로 하였을 뿐,그가 직접 남긴 책은 에크리가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의 근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말과 언어,행동과 경험으로 그 욕망을 어떻게 정의 하는지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던 자크라캉의 평생을 걸쳐 투자한 철학적 가치와 의미는 우리에게 오디디푸 콤플렉스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하고,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 나가고자 하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는 상당히 난해하면서,전공자가 아니라면 깊이 들어갈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우리의 어린 시절 보여준 부모님에 대한 반향과 까칠함, 유아기적인 심리 형태는 어떻게 일어나며,그것을 해소하지 못하면, 공격적인 성향 뿐만 아니라 좌절, 우울감과 같은 심리적 기제로 나타나는 이유를 알수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를 읽으면, 거울효과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에 흔히 보여지는 자신을 인식하며,자아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러한 철학적 요소,심리학적 요소 하나 하나 이해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자크라캉의 에크리는 그에 관한 다양한 소개서를 통해 먼저 읽은 뒤 그의 철학적 사유에 접근해 나가면, 상당히 효율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 기재에서, 상당한 공격성에 대해서, 나르시시즘, 억압, 히스테리, 리비도, 퇴행적인 모습,강박증의 원인과 인과관계에 대해 과학적인 매커니즘에 의거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책을 통해 자크라캉의 철학과 심리에 대해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크라캉이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대해 어떻게 관찰하며, 자신의 철학적 영감으로 완성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을 책을 읽는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