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림 시대의 불꽃 13
정지아 지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필명을 듣긴 했지만 이효석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효석이 왜 한림을 만나달라고 한 것일까?

"김 선생에 대해 소문이 자자했던 것, 알고 있었소? 동경에서 글 잘 쓰고 영리하고 예쁘고 마음까지 고운 신여성 김한림을 모르는 남자가 없었소. 김 선생은 몰랐겠지만 남몰래 김 선생을 연모한 남자들이 한둘이 아니라오,. 이효석 선배도 그 중 한 사람이었지. 나더러 영변에 가서 김 선생에게 중매를 서달랍디다.:

김소운은 잠시 말를 멈추고 한림의 눈을 응시했다. 어떤 감정의 동요도 담겨 있지 않은 말간 눈빛이었다. (-25-)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내 아이 만은 이 독한 잔을 피해 가길 내 딸에게도 사형을 사형을 선고하시오! 우리의 아들 딸은 죄인이 아니다.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93-)

긴급조치 1,2 호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위가 예년과 달리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터져 나오자 박정희 정권은 학생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3월 29일을 기해 대량 검거에 나섰다. 그리고 며칠 동안의 고문과 심문을 결과로 1974년 4월 3일 대통령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다. 유신비판에 대해 최고 15년 형의 유기징역을 규정한데 비해 긴급조치 4호는 사형까지 규정하는 위압적인 것이었다. 동시에 박정희 정권은 아직 전모도 밝혀지지 않은 민청학련이라는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117-)

"오, 오늘 새벽에 사형을 시켰답니다. 오늘 새벽에 다 죽었대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답답했는지 누군가 큰 소리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인혁당 관련자들 8명이 오늘 새벽 사형을 당했단 말입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누구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설마 그럴리가 있습니까?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한 게 바로 어제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새벽에 사형을 집행하다니 설마 그런 일이 있으려구요. 뭔가 잘못 아신 걸겁니다. 제가 알건대 세계적으로 그런 유례가 없습니다."

임인영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145-)

그해 여성농민회는 한림에게 감사패를 수여했다. 한림은 돌로 새긴 감사패를 받아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유일하게 받은 게 이거에요."

1960년대 초반 한일회담 반대투쟁 때부터 언제나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한림이 세상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대가는 여성농민회가 준 돌로 새긴 감사패 하나였다. 한림은 유신헌법에 반대한다는 서명을 받기 위해 원주로 부산으로 집안일도 젖혀둔채 뛰어다녔고, 구속자가족협의회가 처음발족했을때부터 7년동안 총무로 일하면서 남들 귀찮아하는 뒤치다꺼리를 다했으며,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는 어린 손녀 한이를 포대기에 들쳐 업은 채 칠순이 넘은 나이로 최루탄 가스 자욱한 거리를 뛰어다녔다. (-174-)

작가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빨갱이의 딸로 살아가는 정지아 자신의 삶이 조망될 수 있었다. 작가 정지아는 20대 국가보안법에 연루된 바 있으며, 지금까지 순탄하지 않은 삶, 험난한 인생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전작 중 눈여겨 보았던 책 「김한림 」이다.이 책은 시대의 불꽃 시리즈 중 한권으로, 전태일, 최종길, 김진수, 김상진, 김경숙,성완희, 김주열 등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인물들을 조망하고 있다.

여성 김한림, 1914년3월 7일 태어나 1993년 8월 25일에 사망하다. 김주열, 전태일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여성으로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회단체 내에서도 기억되지 않은 신여성이였다. 시인 이효석(1907년 4월 5일~1942년 5월 25일)과 교류하였으며, 남편 김소운과 결혼하였으며, 김한림은 이효석 뿐만 아니라 장준하, 백기완, 문익환과 민중운동에 힘을 써왔다. 하지만 양지에서 일하지 않았으며,궃은 일을 도맡아 하는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총무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즉 세상에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하였지만, 누구나 필요한 곳에 김한림이 있었다. 김한림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모여 있었다. 총무로서, 회계나 단체의 일을 도맡아 하였고, 엘리트 여성으로서, 여러가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민중운동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고 있었다. 김한림의 딸 윤이도 엄마를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 여성운동에 매진한다. 즉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충분한 자리에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내려놓고, 겸손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 책에서, 김한림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세상의 밀알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삶의 가치관으로 삼을 수 있는지 배워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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