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잠든 계절
진설라 지음 / 델피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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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그의 손가락이 나의 목 언저리에 닿는 게 느껴졌다. 따스한 낯선 손길은 뜻하지 않게 신중하고도 부드러웠다. 심장을 스치는 총알처럼 충격적이라 움지일 수가 없었다. 숨도 맘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도망갈 틈도 없이 상기된 내 뺨을 그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다가왔다. 파르르 떨리는 나의 잆굴을 그의 목울대에 파묻을 수 있는 근접한 거리였다. 찰나였다. 그의 입술이 경직된 내 입술 위로 내려앚은 건, 밀어내고 싶은 맘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은 것도, 말도 안 되는 그 찰나였다. (-16-)

"자꾸 이러니까 내가 미치겠다는 거예요.그렇게 날 쳐다보니까."

말을 끝낸 그는 천천히 내 뺨을 어루만졌다. 정신없이 떨려서 숨죽인 채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가 더 다가왔다. 입술을 내 밀면 그의 입술을 금방이라도 깨물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초콜릿 같은 그의 숨결도 가져올 수 있고, 숨이 가빠졌다. 그도 나도. (-82-)

남편이 차가운 가위로 내 입술을 짓눌렀다. 부르르 눈을 떳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눈앞에서 나를 조롱했다. 겁에 질린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남편의 눈동자가 죽은 사람처럼 텅 비었다. 어느 새 감정이 사라진 무표정한 얼굴. 온기 한 점 없는 차디찬 저 얼굴이 나는 제일 두렵다. (-167-)

내가 애정하고 투명하고 반짝이는 눈을 들여다보며 살포시 입술을 부딪쳤다. 입술을 열고 날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가벼운 입맞춤으로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남긴다. 그 하얀 손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엄기면 바람이 꽃을 흔드는 것처럼 가슴속을 헤집는 에델바이스 향이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지금처럼, 그럼 나는 사춘기 소년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그녀를 안고 싶다. 어김없이 몸이 뜨거워졌다. (-252-)

책장 앞엔은 K.D.H 낯익은 필체의 이니셜이 적혀 있었다. 그이 책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멈춘다. 책 귀퉁이레서 스마일 캐릭털르 발견했다. 그의 책이 확실했다.쓰라린 미소가 입가를 맴돌았다. 다시 천천히 차르륵 넘기자 그의 만화가 시작된다. 네모난 창문이 있다. 그 창에 스마일 캐릭터가 서 있다. 갑자기 똑같이 생긴 스마일 캐릭터가 나타나더니 가위로 목을 찔렀다.

한국 소설 『기억이 잠든 계절』은 쓴 작가 진설라는 미술을 전공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예술에서 영감을 얻고, 행간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는 것을 좋아한다. 작가의 독특한 스토리 성향은 소설 『기억이 잠든 계절』에도 주인공 민혜선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주인공 민혜선에게는 완벽한 두 사람이 있었으며, 한 사람은 그의 쌍둥이 언니이자 , 전교 1등 모범생 민혜신이며, 또다른 인물은 그녀를 유혹하는 K.D.H 이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K.D.H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다.한사람은 민혜선의 남편이며, 또 다른 한사람은 민혜선의 마음과 입술을 훔치는 또다른 남자이다. 즉, 민혜선은 소시오패스 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좋은 남자(?)를 두고,또다른 남자 K.D.H에게 빠지고 만다.그는 키가 크고, 핸썸하고, 여성을 적극 배려할 줄 아는 여성의 마음을 훔치는 남자이다.그것은 남편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철저히 이기적이며, 불륜을 버지르는 민혜선의 자아와 엮이고 있었다.

소설 『기억이 잠든 계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죽음의 그림자는 행간 속에 묻어나 있으며, 누군가 죽어야만 목적을 달성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밖에서 볼 때, 남편이 민혜선을 상대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걸 본다면, 소시오패스로 이해될 수 있지만, 부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속을 들여다 보면,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특이점은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부부만 아는 것이며, 외부인이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한국인의 심리가 고스란히 내포되고 있었다. 밈혜선의 인생의 열등감의 근원은 세상을 떠나고 없는 쌍둥이 언니 민혜신이었고, 남편 K.D.H 의 열등감의 근원은 학창 시절 완벽한 이미지르 보여주고 있는 또다른 K.D.H 였다. 바로 이 소설에서 삼각관계속에서,민혜선의 선택과 결정을 이해한다면, 작가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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