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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ㅣ 걷는사람 시인선 79
최명진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1월
평점 :
첫눈
아내 몰래 오십만원 드리러 부러 몰래는 아니었는데 드리다 보니 처가엔 서운할 일 같아 주저리 단속하고 밖을 나왔다 마침 첫눈이 내리고 있었고 아내가 점찍어 둔 신상 겨울 점퍼가 생각났다.
아내 몰래 낮술 홀짝이며 싱숭생숭 앉아 있자니 눈발이 점점 성해지고 있었다. 자기도 첫눈 보고 있다고 전화해 온 아내다. 첫 생각에 지금 당장 만날까 말꼬릴 올리는데, 아내여 미안하다. (-11-)
개 미안
눈 내린다.
달리고 싶다
개는 좋겠다
개는 달린다.
두 발로 쫓지만
네발로 긴 적도 많다.
부끄럽지 않아서
개는 좋겠다.
남녀는 창 밖을 본다
첫눈에 나도
푹 빠졌지
사랑받는 강아지였지
어쩌다가 개는
나와 같은 놈인지
멍멍 하고는
자빠져 있어야 되는지
꼬리 내릴 수 있어
개는 좋겠다.
개는 뒹군다.
개는 멀어진다.
개는 돌아와
수작을 나누면
지나던 개 웃겠다.
활짝. (-81-)
시인 최명진의 시집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이다. 이 시집은 삶을 기억하게 되며, 추억을 꼽씹게 한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울다가 웃었다 하고 있었다. 삶은 나에게 타인의 삶 뿐만 아니라 죽음도 내포하고 있었다. 때로는 누군가를 보면서 마음에 걸리고, 때로는 챙겨주지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 시인은 바로 우리의 그러한 우뭉쭈물 거리는 미안한 마음을 잘 포착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집 곳곳에 처음이라는 설레임이 담고 있었다. 처음이라는 일상 속 설레임은 행복과 기쁨의 시작이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은 슬픔과 아쉬움이다.우리는 평범한 일상 속 설레임과 아쉬움 두 가지 갈림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서로 살아가고, 함께 더불어 살아지는데 있어서, 우리 스스로 우유부단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시집 『 슬픔의 불을 꺼야 하네』 에 등장하는 시 『개 미안』 이 눈에 들어왔다. 2022년 올해 유난히 눈이 많이 왔다. 무릎까지 눈이 쌓이고, 도로 곳곳에 눈사람이 보였다. 차가 도로 위에서 핑핑 돌아가는 와중에, 길가에 누비는 똥개는 눈이 너무 좋았다. 눈밭을 뛰어 다니는 강아지의 모습이 선하다. 하얀 세상, 맑은 세상 속에서 순수한 강아지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우리 스스로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눈에 투영되고 있었다. 눈길에 방심하다가 자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 빙판에 꽈당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게 된다. 행복한 삶이란 부끄러움 속에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다. 삶에 대해서, 부끄러워만 기억 하지 말고, 행복한 추억으로 살아간다면, 내 삶에 대해서,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나에게 너그러워지면,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진다. 행복한 시 『개 미안 』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