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삼문의 약속 - 조선의 충신들
성해석 지음 / 북새바람 / 2023년 1월
평점 :



의금부사는 고통과 회환어린 신음을 꾹 참으며 수레에서 내리는 삼문을 정중하게 부축했다. 수레에서 내린 삼문은 여전히 고통이 온몸을 파고드는 듯했으나 안색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가 군기감 앞에 무릎을 꿇으니 군중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한숨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들은 삼문을 향해 존경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11-)
삼문과 팽년, 위지의 일은 즉시 대사성에게 알려졌다. 대제학, 동지사 와 같은 고위 관료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다른 벼슬을 겸직하였기에 성균관에서는 대사성이 가장 으뜸이었다. 그러나 대사성에게 일이 알려지는 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대사성은 삼문의 일을 듣고는 노발대발했다. 사문과 팽년, 위지는 사성과 함께 불려가야만 했다. 처음 일을 최이서도 함께. (-90-)
"궁궐에서 내려온 전갈이 있네, 근보."
삼문의 물음에도 대사성은 대답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궁궐에서 전해진 소식이라고 하니, 삼문은 우선 잠자코 대사성의 말을 들었다.
"대신들이 집현전 학사를 추천하라는 전갈이네. 항상 학사는 대신들이 추천하였던 일이지. 내게는 익숙한 일이네." (-130-)
삼문과 숙주는 황찬에게서 배운 가르침을 임금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한성으로 가는 먼 여정을 시작하였다.그러나 처음 요동으로 갔을 때와 달리,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요동을 벗어나 조선에 다다를 무렵, 황찬에게서 얻은 가르침을 다시 확인하던 숙주가 삼문에게 말하였다. (-218-)
삼문과 숙주의 대화를 듣던 이개가 코웃음을 쳤다. 누구도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삼문은 더더욱 이상함을 느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제법 잘 아는 사이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이전부터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따랐다는 듯일 터, 헌데 왜? (-269-)
"약속을 지켰느냐?"
아득했던 정신이 다시 낯선 목소리로 정신을 차렸다. 이미 달빛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느덧 환한 햇빛이 삼문의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흐릿해진 삼문의 시야로 수양대군의 모습이 아른아른 보였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삼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332-)
1456년 단종 복위에 목숨을 바친 인물들 가운데 남효온의 <육신전>에 소개된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6명을 사육신이라 말한다. 그리고 김시습 원호·이맹전·성담수·조려·남효온처럼 단종복위운동을 실패하고, 벼슬길에 나서지 않는 이들은 생육신이라 말한다. 성삼문의 경우 단종복위운동에 실패하여 자신의 목숨을 잃은 사육신이었으며, 자는 근보이다.
소설 「성삼문의 약속」은 단종복위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실제 조선시대 경상북도 순흥도호부는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했던 금성군으로 인해, 순흥 소수서원 앞 죽계계곡에 피가 흘러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세중의 둘째 아들이었던 수양대군은 문종이 죽은 후,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 세조임금이 되었다. 명분없는 왕위 찬탈은 종묘사직을 얼지럽히는 명분이기 때문에, 집현전 학자들은 불의에 항거하게 되었다.결코 집현전학사로서, 세조의 단종 폐위는 허용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성삼문이며, 또다른 이가 박팽년이다. 서로 둘도 없는 친우였던 두 사람, 박팽년이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고, 성삼문도 따라가게 된다. 세조가 재임하였던 그 시기에는 역모죄는 중형에 다스렸으며, 3족을 멸할 정도로 , 성삼문의 가솔들 또한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여기서 성삼문의 약속은 성삼문과 수양대군 사이의 약속으로서, 서로의 운명을 뒤바꾸게 되는 이유다. 절개와 충신으로서, 성삼문이 남긴 유교적 가치는 지금 우리 삶에 있어서,도의적 가치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피가 계곡을 이루어서, 피가 끝나는 지점, 안정면 동촌 피끝마을에 얽힌 단종복위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 그런지, 성삼문과 한명회의 교차된 운명은 씁쓸하게 느껴졌다.
